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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75

상냥한 폭력의 시대 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16-10-10 정이현의 소설은 잘 읽히고, 재미있다. 읽는 즐거움이 있고, 이야기에 빨려들어간다. 이번 소설들도 좋았다. 좀 싱겁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단편의 주인공들은 지난번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었다. 작가가 나이들면서 주인공들도 같이 늙어간다. 화자는 마흔의 독신남("미스조와 거북이와 나")이거나, 열여섯살 딸을 둔 엄마("아무것도 아닌 것")이거나, 결혼한 지 6년이 지난 워킹맘("서랍속의 집"),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낸 엄마("안나") 다. 열여섯살 딸의 출산을 지켜보는 엄마이야기 "아무것도 아닌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정이현의 작품은 거의 다 읽었는데, "오늘의 거짓말"이 가장 좋았다. "달콤한 나의 도시"와 "낭만적 사랑과 .. 2016. 11. 24.
살인자의 기억법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은이) | 문학동네 | 2013-07-24 이제 일흔이 된 한 남자가 있다. 열여섯에, 술만 마시면 가족을 두들겨 패는 아버지를 죽인 후, 마흔 다섯이 될 때까지 수십 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멈춘 지 이제 이십 오년이다. 그동안은 수의사로 살았고, 지금은 문화센터에서 시 강좌를 듣는 것 말고는 별다른 일이 없다. 이제는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기 때문에 매일의 일을 기록한다. 그것이 그의 기억법이다. 마지막으로 살해한 어떤 여자의 어린 딸을 데리고 와서 친딸처럼 키웠고, 이제 그 딸은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누군가 딸 은희를 죽이려 하는 것 같아 불안하기만 하다. 기억은 자꾸 끊기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온통 의심이고, 의문이다. 이 책을 읽은 적.. 2015. 12. 25.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김영하 (지은이) | 문학동네 | 2010-07-20 이렇게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소재로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의 재주가 부럽다. 유치해보이는 '로봇'같은 소재로도 괜찮은 단편 소설이 나오는구나, 하는 걸 알았다. 지하철 개찰구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자가 자꾸 만나달라고 해서 차 한잔을 마시는데, 그 남자가 "저는 로봇입니다"라고 하다니. 그렇게 몇 번 만나다, 사랑에 빠져 고백하니 갑자기 남자, 아니 로봇이 떠나겠단다. 머릿속의 프로그램이, 떠나라고 경고한다나 뭐라나.(). 결혼을 앞둔 여자가, 전에 알던 남자에게 결혼 소식을 알리니, 남자가 결혼 전에 여행이나 한 번 가자고 하면서 거의 납치하다시피 강원도 바다까지 끌고가고, 거기서 건달인지 부랑자인지와 시비에 휘말려.. 2015. 11. 19.
안녕, 내 모든 것 안녕, 내 모든 것정이현 (지은이) | 창비 | 2013-07-05 "달콤한 나의 도시"와 "오늘의 거짓말"을 읽고 작가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그 이후의 책들은 좀 시시하다. 작가가 경험한 것 이상의 그 어떤 것도 보여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90년대 학번, 8학군, 강남, 아파트, 중산층, 졸부, 살갑지는 않지만 '끔찍하게 미워한 적도 없'는 가족들... 그렇게 맴돈다. 한번 듣거나 본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 지혜, 틱 장애가 있는 준모, 부모를 떠나 부자 할머니 집에서 눈치 보며 살게 된 세미. 이 세 친구는 중학교때 만나 고등학교까지 항상 함께였다. 단짝이지만, 사실은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친구들이다. 그리고 고3의 여름, 그들에게 한 사건이 일어났고, 셋은 더이상 친하게 지내지 않게 된다. .. 2015. 10. 21.
공무도하 공무도하 김훈 (지은이) | 문학동네 | 2009-10-06 짐작과는 다른 소설이다. 왜 제목이 ‘공무도하’인가. 이 소설에는 한국매일신문 사회부 기자 문정수, 일 년에 몇 권 인문 서적을 내는 작은 출판사 편집자 노목희, 문정수가 어쩌다 알게 된 소방관 박옥출, 노목희가 과거에 알고 지낸 대학선배 장철수, 아들을 잃은 오금자와 딸을 잃은 방천석 등이 등장한다. 창야, 해망군, 뱀섬은 그들의 과거이며 현재다. 미래일 수는 없어 보인다. 기승전결 없이 이어지는 사건과 사고, 그로 인한 죽음, 그리고 남아있는 산 자들의 모습이 이 책에 있다. ‘공무도하가’는 고조선 시대에 물에 빠져 죽은 백수광부의 죽음을 슬퍼하는 노래이고, 이 책은 이런저런 이유로 죽은 사람들과 남아서 그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2013. 11. 7.
정글만리 1, 2, 3 정글만리 1, 2, 3 조정래 (지은이) | 해냄 | 2013-07-15 십수 년 전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중국의 성장과 그 영향력에 대해 말이 많았는데, 이제야 이런 소설이 나왔구나 싶다. 그것도 거장인 노(老)작가가 펜으로 원고지에 쓴 ‘트렌디한’ 소설이다. 만약 작가의 이름이 쓰여있지 않았다면 조정래 작가의 작품이라는 걸 몰랐을 뻔했다. 긴장감은 없지만, 몰입도가 높은 소설.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학연과 지연보다 더 지독한 ‘꽌시(관계, 關係)’가 있는 나라, ‘얼나이(첩)’를 공공연히 인정하는 나라, 시민의식은 실종되고, 가난한 사람은 억울하게 당하기만 하는 나라, 돈이면 뭐든 다 되는 곳. 대한민국 못지 않은 성형과 명품 천국... 광활한 중국땅에서 펼쳐지는 어이없는.. 2013. 9. 27.
사랑의 기초 : 연인들 사랑의 기초 : 연인들 정이현 (지은이) | 톨 | 2012-05-09 알랭 드 보통과 함께 작업한 프로젝트 소설이다. ‘사랑’이라는 공통 주제를 갖긴 하지만, 결국은 각자 다른 내용의 글을 썼다. 정이현의 소설 부제는 ‘연인들’이고, 알랭 드 보통은 ‘한 남자’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소설의 서문에서 왜 “정이현은 (처절한 비극 또는 해피엔딩의) 어느 한 쪽의 상투적 결말을 선택하기엔 매우 영리하고 흥미진진한 작가다”라고 했을까? 이렇게 상투적인 결말이 또 있나? 1980년대 태어난 주인공 남녀의 평범한 가정사와 평범한 연애, 그리고 평범한 이별까지의 이야기다. 너무 평범해서 마치 자신의 과거를 들킨 것처럼 민망할 정도다. ‘사랑의 고통이 가슴 아프게 묘사’되어 있다? 어디에? 차라리 그런 걸 모르고 .. 2013.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