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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75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저 | 창비)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하나의 세상을 읽는 것이다… 라고 한다면, 성석제의 소설만큼 그에 잘 어울리는 작품도 드물겠다. 하나의 단편 속에서 한 인물의 삶을 그렇게 즐겁게, 기가 막히도록 멋들어지게 그려낸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다. 일단은, 그의 작품 속으로 빠져들어 몇 시간을 시계 한 번 보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렇고, 한 작품을 다 읽고 났을 때, 한 인물에 대해 그토록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이 그렇다. 글재주 뛰어난 한 작가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역시 즐겁기 짝이 없다. 혹자는 그의 작품이 너무 재미를 추구해 의도적 말잔치가 심하다는 얘기도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그 흔한 후일담이라든지, 불륜, 2, 30대 여성의 소소한 일상을 그린 이야기.. 2002. 9. 1.
장밋빛 인생 장밋빛 인생 : 2002년 제2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정미경 지음, 민음사) 광고, 헬스, 요리, 메이크업... 사랑하는 여자의 자살...이런 몇 가지 코드때문에 무척 젊고 가벼운 이야기로, 빠르게 읽어낼 수 있을거라 믿었다. 그리고, 과연 그랬다. 아래에서 어떤 독자가 쓴 후기대로, 20대가 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로. '장미빛 인생'이라는 제목 마저도, 처음 보았을 땐 오래전 유행했던 감미로운 샹송, 혹은 쓸쓸한 대학로 카페를 연상시키던 것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어설프게도, 그저 반어법을 위해서 가장 흔한 이름을 붙여 놓은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특별히 잘못된 것은 없는데, 왜일까? 뭔가 대단한 메시지가 책 끝머리에 나오지 않을까, 하는 혼자만의 기대때문일까? 주인공 남자가.. 2002. 8. 27.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신이현 저 | 작가정신) 신이현의 첫 번째 소설 ‘숨어있기 좋은 방’은 무척 신선했다. 쉽고 빠르게 읽히면서도 우울한 느낌에 취해 책장을 넘기는 손동작이 느려지기도 했다. 국내 소설은 정해진 몇몇 작가의 것만 읽는 편인데, 그녀의 책이 우연히 내 눈에 들어왔고, 다행히도 재미있게 읽었다. 두 번째 소설인 ‘갈매기 호텔’은 약간 실망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본 ‘내가 가장…’도 ‘숨어있기 좋은 방’만큼의 즐거움을 주진 못했다. 소재가 ‘방황하는 청소년’이라 그런지, ‘덜 자란’ 느낌의 주인공들에, 주제 의식 또한 서문에서 밝힌, 의도한 바 만큼의 진지함을 전달하지 못한 듯 하다. 아래의 리뷰에서 누군가가 얘기한 것처럼 시 한 편이 차라리 소설보다 더 진한 느낌을 준다. 작가정신 소.. 2002. 8. 4.
진술 진술 (하일지 | 문학과지성사) 몇 년 전까지는 하일지의 소설이 나오는 대로 챙겨 읽는 것도 모자라 논문집까지 찾아 파고 들었다. ‘경마장 가는 길’, ‘경마장은 네거리에서…’, ‘경마장에서 생긴 일’ 등 일련의 ‘경마장 시절’ 소설들은 두 세 번씩 반복해서 읽어도 재미있었고,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함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하일지 소설에 흥미를 잃었고, 이번에는 거의 몇 년 만에 그의 소설을 읽었다. 언젠가 누보 로망 작가 중 한 사람인 미쉘 뷔토르의 2인칭 기법을 적용시켜 한국 소설에 새로운 느낌을 불어 넣더니, 이번에는 독백이다… 그는 끊임없이 부인할 지 몰라도, 몇 명의 외국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로브그리예가 그렇고, 카프카가 그렇다. ‘진술’은 물론 그런 의.. 2002. 7. 28.
상속 상속 (은희경 저 | 문학과지성사) "새의 선물" 이후 그녀의 장편들은 좀 실망스럽지만 반대로 단편은 언제나 만족스럽다. 몇 년 전 그녀의 소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 적에 사람들은 요즘 소설이 너무 가벼워졌느니 어쩌니 하며 여성 소설가들을 싸잡아 혹독한 비난을 날렸으나, 그러면 어떠랴... 은희경의 소설은 항상 즐거웠다. 소설을 읽어 즐겁다는 것, 언제나 옆에 두고 친구처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조금은 냉소적인 느낌의 주인공들이 자주 등장하던 그녀의 소설이 조금 달라졌다. 30대 직장 여성이나 뭔가 부족한 부부의 생활이 중심이던 소재가 이번에는 가족, 유년으로 많이 옮겨졌다. 아버지의 죽음과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의혹 때문에 내용 속으로 쏙 빠져들게 한 "상속"은 싱겁게 끝나버리긴 .. 2002. 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