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편소설78

레디메이드 인생 레디메이드 인생 채만식 저 / 한형구 편 | 문학과지성사 친일파 작가로 알려져 있는 채만식은 1902년 군산에서 태어나 1950년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레디메드 인생"(1934), "태평천하"(1938), "탁류"(1938) 등 주옥같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 친일파인데 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채만식의 작품이 실리고, 여전히 그의 소설이 널리 읽히는 걸까? 채만식은 스물 셋에 소설가로 등단한 후 동아일보 기자로 잠깐 일하다가 그만두고, 서른 무렵부터 많은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KAPF(카프, 1925년 결성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구성원 대량 검거 사태를 계기로 2년여 동안(1934~1935) 절필하기도 했는데, 이후 발표한 소설들이 큰 인기를 끌면서 중견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거기까지였다.. 2023. 1. 26.
오직 두 사람 오직 두 사람 김영하 저 | 문학동네 | 2017년 05월 24일 작가의 이전 소설들도 다 재미있었는데, 이번 소설 역시 그렇다. 김영하는 언제부터 이렇게 글을 재미있게 잘 썼을까, 부럽다. 오랜만에 단편집이 나왔지만, 제목이 별로 인상적이지 않아 당장 읽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는데(이전 소설집 제목은, "오빠가 돌아왔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같은 거였으니까), 그래도 김영하 소설이니 재미있겠지 싶어 샀다. 읽고나서 김영하 소설을 한 번도 못 읽어본 누군가에게 주고 싶기도 했고. 표제작인 "오직 두 사람"의 두 사람이 아버지와 딸일 줄이야. 아버지 그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의존하며 살다 마흔 넘어 노처녀가 된 딸이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적은 글이.. 2023. 1. 24.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32 사랑을 믿다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32 사랑을 믿다 : 2008년도 제 3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권여선 등저 | 문학사상 연초에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를 읽고나서, 뭔가 더 읽어볼까 하며 고른 게 이 책이다. 2008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품집이다. 수상작인 "사랑을 믿다"와 권작가의 자선 대표작 "내 정원의 붉은 열매"에도 역시 술마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책의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아도(심지어 머릿속에서 두 작품의 내용이 섞였다), '제육과 해물의 반반' 안주나 맥주에 안동소주를 섞어마시는 장면은 기억에 남는다. '옥상에 옥탑방을 얹은 낡은 삼층짜리 건물'을 여자주인공에게 유산으로 남겨준 큰고모가 등장하는 게 수상작 "사랑을 믿다"이고, 대학때 친하게 지난 P형을 생각하며 친구와 와인을 마시고, 부추만두, 새우.. 2023. 1. 9.
안녕 주정뱅이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저 | 창비 권여선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게 작년인데, 20년 전에 등단한 이 작가를 왜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을까. 미안한 얘기지만 작가의 이름도 평범하고, 그동안 출간한 책의 제목도 하품나게 심심해서였을거다. "내 정원의 붉은 열매"나 "푸르른 틈새" 같은 것들. 게다가 2008년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도 "사랑을 믿다"라니. 이 소설집은 2016년 봄에 출간되었는데, 그즈음에 책 소개 코너에서 제목을 눈여겨 봤고, 그러다가 얼마전 잘 아는 후배의 추천까지 받은 바람에, 읽었다. 내 취향에 아주 잘 맞는 소설로, 한 편 한 편 읽어버리는 게 아깝기만 했다. 나이가 더 들어버린 정이현을 만난 느낌이랄까. 소설집 속에 "안녕 주정뱅이"라는 소설은 없다. 다만 모든 단편에 '술'이 등장하고.. 2022. 12. 30.
여자 없는 남자들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 문학동네 | 원제 : 女のいない男たち 표제작 "여자 없는 남자들"을 포함해 지극히 하루키다운 7편의 단편 소설을 모아 놓은 책이다. 2014년에 출간된 것으로, "9년 만에 새롭게 태동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세계"라는 홍보 문구가 있지만, 사실 이전의 단편 소설과 비슷한 패턴, 비슷한 소재에 비슷한 등장인물이 나온다. 대부분의 주인공은 중년의 남자이고, 그의 주변에는 뭔가 기묘한 일이 일어나며, 그걸 딱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식이다. 다음에 또 새로운 소설이 출간되면 읽을 것인가, 단편이나 에세이라면 그럴 것 같다. 나중에 생각나지 않을까봐 적어놓는 줄거리. 드라이브 마이 카 10여 년 전 암으로 아내를 잃은 중년의 연극 배.. 2022. 12. 29.
잠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 문학사상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9년에 쓴 '조금 긴 분량의 단편소설'이다. 국내에 소개된 건 2012년으로, 한 편의 단편소설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된 것이다. 독특한 표지에 뭔가 대단할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이전에 하루키가 쓴 단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짧은 소설이 단행본으로 나온 것은, 독일에서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이 곁들여져 그럴듯하게 확장되었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 잘나가는 치과 의사를 남편으로 둔 30세의 여자가, 어느날 밤 '가위눌림'을 겪은 후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다. 책 첫머리에 '잠을 못 잔 지 십칠 일째다'라고 하면서 '불면증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라고 썼다. 잠을 못 잔다는 사실 말고는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이니, 영화 '인썸니아.. 2022. 12. 26.
상냥한 폭력의 시대 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16-10-10 정이현의 소설은 잘 읽히고, 재미있다. 읽는 즐거움이 있고, 이야기에 빨려들어간다. 이번 소설들도 좋았다. 좀 싱겁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단편의 주인공들은 지난번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었다. 작가가 나이들면서 주인공들도 같이 늙어간다. 화자는 마흔의 독신남("미스조와 거북이와 나")이거나, 열여섯살 딸을 둔 엄마("아무것도 아닌 것")이거나, 결혼한 지 6년이 지난 워킹맘("서랍속의 집"),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낸 엄마("안나") 다. 열여섯살 딸의 출산을 지켜보는 엄마이야기 "아무것도 아닌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정이현의 작품은 거의 다 읽었는데, "오늘의 거짓말"이 가장 좋았다. "달콤한 나의 도시"와 "낭만적 사랑과 .. 2016.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