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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여자 없는 남자들

by mariannne 2022. 12. 29.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 문학동네 | 원제 : 女のいない男たち 

표제작 "여자 없는 남자들"을 포함해 지극히 하루키다운 7편의 단편 소설을 모아 놓은 책이다. 2014년에 출간된 것으로,  "9년 만에 새롭게 태동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세계"라는 홍보 문구가 있지만, 사실 이전의 단편 소설과 비슷한 패턴, 비슷한 소재에 비슷한 등장인물이 나온다. 대부분의 주인공은 중년의 남자이고, 그의 주변에는 뭔가 기묘한 일이 일어나며, 그걸 딱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식이다. 다음에 또 새로운 소설이 출간되면 읽을 것인가, 단편이나 에세이라면 그럴 것 같다. 


나중에 생각나지 않을까봐 적어놓는 줄거리. 

드라이브 마이 카 
10여 년 전 암으로 아내를 잃은 중년의 연극 배우가 20대 중반의 젊은 여자 운전수를 채용해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아내가 병에 걸리기 전 잠자리를 함께 한 남자를 만났고, 아내가 죽은 후 반 년 정도 그와 술친구로 지냈다는 이야기 같은 것.  

예스터데이 
십 수년 전 알고 지낸 친구 기타루는 도쿄 태생이지만 특이하게도 간사이 사투리를 배워 완벽하게 구사했다. 기타루는 오래 알고 지낸 여자친구 에리카를 '나'에게 소개시켜줬고, 이 주일 후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며 잠적했다. 

독립기관 
50대 초반 독신의 성형외과 의사 도카이는 수입도, 여자도 아쉬울 게 없는 남자다. 애인은 늘 몇 명씩 있었지만 어쩌다가 난생 처음 사랑에 빠졌고, 그녀가 남편도 아닌 또 다른 젊은 남자에게로 가자 상처를 받고 시름시름 앓다가 곡기를 끊고 죽는다. 

셰에라자드 
무슨 일인가로 오피스텔에 은둔하게 된 하바라는 일주일에 두 번꼴로 식료품을 가지고 찾아오는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와는 자연스럽게 잠자를 같이 했고, 그녀는 매번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기노 
기노는 스포츠용품 판매회사에서 십칠 년을 근무하다 그만두고 바(bar)를 차린다. 그 가게에 가끔 오는 기묘한 느낌의 한 남자. 어느 날 기노에게 가게문을 닫고 잠시 이곳을 떠나 있으라고 말하고, 기노는 그의 말대로 한다. 

사랑하는 잠자
카프카의 "변신"에서 모티브를 차용한 소설이다. 카프카의 소설 속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사람에서 벌레로 변신한 것과 달리 이 소설의 주인공은 눈을 떴을 때, 무언가에서 사람으로 변신한 것이다. 

여자 없는 남자들
새벽 한 시가 넘어 전화가 걸려온다. 한 남자가 "아내가 지난주 수요일에 자살했습니다"라고 전하는데, 그녀는 '나'의 옛 연인이었다. 


책 속 구절: 
그는 말을 이었다. "한 가지 큰 문제는 그녀를 알면 알수록 점점 더 그녀가 좋아진다는 겁니다. 일 년 반을 사귀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깊이 그녀에게 빠져 있어요. 이젠 그녀의 마음과 내 마음이 뭔가로 단단히 묶여버린 느낌이에요. 그녀의 마음이 움직이면 내 마음도 따라서 당겨집니다. 로프로 이어진 두 척의 보트처럼. 줄을 끊으려 해도 그걸 끊어낼 칼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어요. 이런 건 지금까지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감정입니다. 그게 나를 불안하게 만들어요. 이대로 점점 그리움이 깊어지면 나는 대체 어떻게 될까 하고."
"그렇군요."나는 말했다. 하지만 도카이는 좀더 실질적인 대답을 원하는 것 같았다. 
"다니무라 씨,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인 대책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본 바로는 지금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비교적 정상적이고 이치에 맞아 보인다. 사랑한다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다. 자기 마음을 컨트롤할 수 없고, 그래서 불합리한 힘에 휘둘리는 기분이 든다. 즉, 당신은 딱히 일반상식에서 벗어나 이상한 체험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한 여자를 진지하게 사랑하는 것뿐이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고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 만일 못 만나게 된다면 그대로 세상이 끝나버릴 것만 같다, 그런 것은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이상할 것도 특이할 것도 없는, 지극히 일반적인 인생의 한 컷이다. 
도카이 의사는 팔짱을 끼고 내 말을 다시 한참 생각했다.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기색이었다. 어쩌면 '지극히 일반적인 인생의 한 컷'이라는 말을 개념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혹은 실제로 그것이 '사랑한다'는 행위에서 약간은 벗어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p.145~147, "독립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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