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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by mariannne 2022. 12. 26.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 문학사상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9년에 쓴 '조금 긴 분량의 단편소설'이다. 국내에 소개된 건 2012년으로, 한 편의 단편소설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된 것이다. 독특한 표지에 뭔가 대단할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이전에 하루키가 쓴 단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짧은 소설이 단행본으로 나온 것은, 독일에서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이 곁들여져 그럴듯하게 확장되었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 


잘나가는 치과 의사를 남편으로 둔 30세의 여자가, 어느날 밤 '가위눌림'을 겪은 후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다. 책 첫머리에 '잠을 못 잔 지 십칠 일째다'라고 하면서 '불면증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라고 썼다. 잠을 못 잔다는 사실 말고는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이니, 영화 '인썸니아'의 주인공을 보는 것처럼 괴롭지는 않다. 이 여자는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되지도 않는다. 처음 일주일은 거실 소파에 앉아 브랜디를 마시면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연거푸 세 번 읽는다. 그러다가 새벽에 차를 몰고 드라이브를 하기도 한다. 잠든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며 '바보처럼 자고 있다'는 생각도 하고, 아이를 보며 '앞으로 언젠가, 이 아이를 그다지 진지하게 사랑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하는 예감을 갖기도 한다. 그녀는 잠은 자지 않고도 정신과 육체가 멀쩡하게 유지된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었다. 원하는 건 단지 낮에 한 시간 수영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 혼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싶는 것이니까. 

하루키의 다른 단편소설처럼, 이 소설도 갑작스럽게 끝이 난다. 단편은 중편, 장편으로 재구성되기도 하니, 이 책도 언젠가는 다른 소설로 포장되어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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