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의 사랑학
목수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10-09-27
그녀의 전작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이 그녀 속에 담고 있던 얘기가 넘쳐 주르륵 흘려 내 놓은 것이라면, 이번 글은 “이런 글을 써봐야지!” , 작정하고 쥐어 짜며 쓴 듯 느껴져서 처음에는 읽기가 불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읽고 나니 잘 짜여진 책이라는 생각과 함께 '역시 목수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에서 한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저자는, 한 발 떨어져서 보는 대한민국의 ‘위선’이 몹시 불만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들 살아가고 있는 걸까, 생각하면 속이 터지는데 그건 사회, 문화, 정치, 경제에 골고루 해당되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사랑’ 본능이 잠식당하고 있다는 데에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그녀는 “구성원들이 억압에 잘 길들여져 있을 때에만 제대로 굴러갈 수 있는 사회는, 따라서 연애에 너그럽지 않다”(p.15)고 말한다. 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인간이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고, 영적인 기운이 창궐하는 경험“(p.15)이 연애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이없게도 ”교육감이 청소년 자유연애금지를 말하는 사회에서, 10대 여성의 성접대를 상납 받는 검찰의 모습은 한 쌍을 이루는 풍경일 수 밖에 없“고, ”사회가 구린 구석이 많을수록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며, 삶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누릴 권리가 억압당할수록 성산업은 활황을 이룬다“(p.15)는 것이다. 그래서 목수정은, 이제 더 이상 지나가는 여성에게 ‘차 한 잔 하자’고 말하지 않는, ‘야성’이 사라진 시대가 불만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20대 청년이 좋아하는 여자가 생겨 어째야 할지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자 ”우선 열심히 공부해서 합격부터 하라“는 네티즌의 진심어린 답글들이 이어졌지만 목수정은 속이 터지는 듯, 이렇게 얘기한다. - "미래를 위해 저당 잡힌 젊은, 방전된 열정들은 모이고 모여서 우울한 구름을 만들어 내고, 그 구름은 도시 위에 우울한 비를 뿌린다. 그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는 한 가지이다. 당신의 마음이 설렐 때, 그 설렘에 화답하라고. 그 설렘을 죽이고 죽이면 다시는 당신을 찾아오지 않는다고. 삶을 모독하지 말라고. 그러면 삶이 당신을 버릴 것이라고." (p.43~44)
비혼으로, 프랑스인 희완과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그녀는 나이에, 부모에, 주위 시선에, 상대방에 떠밀려 사랑 없이 결혼한 사람에 대해, "사회 전체가 결혼과 사랑을 둘러싸고 펼치는 압력에 굴복한 사람은 이후 삶의 주체로서, 스스로 자신이 지은 우주의 창조자로서 살기를 절반쯤을 포기하게 된다"(p.239)고 말하며 "이후론 쭉 '어차피'의 삶이 된다."고 한다. 왜? "우리의 존재를 가장 극적인 희열과 긴 만족으로 이끄는 것은 바로 그 사랑하는 사람과의 삶"(p.239)이며, "그렇지 않은 삶은 나머지 모든 부분에서 충족이 된다 한들 지루함의 연속일 뿐"(p.239~240)이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떠나는 여행, 함께 마시는 커피, 나누는 잠자리, 산사 주변에서의 한가로운 아침 산책, 그 모든 순간에 스미는 것은 열정과 환희, 공감 대신 공허와 위선, 외로움"(p.240)이니까. 당신은 동의하는가?
목수정의 전작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넌 이제 자유다”라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연애를 억압하는 사회, 효를 강요하는 사회, 여성을 소비하고 착취하는 사회, 가부장적 가족주의의 위선, 삽질하는 사회(물론 건설주의 대한민국을 말한다)를 모두 버리고 훨훨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녀에게, 박수를.
책 속 구절:
빌헬름 라이히의 강력한 지지자며, 정치적 동지이지 신실한 친구로 지내 온 서머힐학교Summerhill School의 설립자 알렌산더 닐Alexander S. Neill은 자신의 책 “서머힐”에서 “서머힐에 온 아이들 중에 성과 신체의 기능에 대해 건전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음‘을 밝히면서 나를 안심시켰다.
[...] 라이히의 신봉자답게 개방적인 사랑과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되는 자유로 아이들을 품어 왔던 서머힐의 교장, 닐은 성에 대해 인류가 한결같이 억압의 입장을 취해 온 이유에 대해 이렇게 결론짓고 있다.
“사랑으로 나누는 성은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다. 그리고 가장 큰 즐거움이기에 억압받는다. 다른 모든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p.40~41)
[...] 우린 자신의 삶에서 의미와 재미를 찾기보다 월드컵에서 한국의 승리를 기원하고 응원하는 데 더 많은 의미와 시간을 부여하고, 월드컵이 끝나고 나면, 또 다른 압도적인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하거나 분노하면서 삶을 삭여 보내곤 한다. 김연아와 박지성의 결혼 상대는 어떤 사람이어야하는지, 타블로는 과연 스탠포드 대학을 나왔는지에 대해 사람들은 말하고 또 말한다. 인터넷의 다양한 커뮤니티들은 배설되지 못한 욕망의 전시장으로서, 우리가 얼마나 자신보다 남의 삶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사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 결혼하고, 불효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이혼하지 않으며, 자식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 옆 사람들의 눈을 생각해서 내 욕망을 숨긴다. 그리고 사회가 공모한 가시적 욕망의 범주를 넘어서는 자를 단죄하며 달려든다. 그렇게 스스로에 의해 유배되는 자아가 비로소 구원받는 순간은 '사랑이 가슴에' 들어차는 바로 그 순간이다.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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