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지난 가을, 인사동 찻집 “귀천”이 문을 닫는다는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천상병 시인의 이 책이 사고 싶어졌다. 사실은 술 때문이 아니라 고문(그는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어이 없이 연류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뤘다)때문에, 그 후유증으로 떠돌이가 된, 그래서 행방불명되었으므로 다정한 지인들에 의해 유고시집 “새”가 발간되었고, 이후 서울 시립 정신병원에서 발견된 천상병은 부인 문순옥 씨와 결혼하여 그녀의 보살핌을 받으며 시를 쓰고, 술을 마시고,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일생을 보낸다. ‘몽롱하다는 것은 장엄하다’라는, 주당으로서의 명문名文을 남긴 그를, ‘일곱살짜리 어린이’같은 그를 미워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남들처럼 승천(昇天)을 위해 애쓰지 않고 귀천(歸天)을 한다”(p.31) 이처럼 위안이 되는 싯구절이 있을까.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 책은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그가 쓴 짧은 글들과 시인 천상병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글(민영 시인, 김훈 작가 등), 스스로의 시에 대한 설명, 그리고 다른 작가들(허윤석, 김윤성, 김남조, 김현승 등)에 대한 천시인의 평론이 담겨있다.
책 속 구절:
이제 내 나이 육십이다. 젊은 날에는 많은 술을 마셨다. 그것도 어떤 술이든 가리지 않고, 그로 인해 나는 작년에 팔 개월 동안의 투병 생활을 했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술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이 세상을 살아간단 말입니까?
생각만해도 아찔하지요? 그러니 내 말은 술은 마시되 조금씩만 마시고 즐겨 마시라는 것입니다. 나 같은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술로 인해 몸이 망가지면 술은 못 마십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조식하여 오래오래 술을 사랑하고 즐기려면 나 같은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술이 없고 술을 못 마신다면 이 세상은 끝나는 것이니까요. (p.55)
나와 다정했던 명동 술 동지들, 그들은 지금 군에 간 S, 군의관이 된 K, 접장을 하는 친구 S들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문학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친구들이었다. 4, 5년 전에는 아침부터 ‘명동’에서 만났고 만나면 술이었다. 돈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모두 빈털터리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자주, 아니 정기적으로 어김없이 술을 마실 수가 있었는지 한국의 기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무렵 내가 “우리는 돈이 한 푼도 없는데 어떻게 술을 마실 수 있을까”라고 술자리에서 말하니까 K 가라사대 “이 자식아! 그것도 몰라? 당구장에 가봐. 다마를 잘 치는 놈은 하루 종일 당구장에서 다마만 치잖아. 그 자식들이 돈이 많아서 그런 줄 알아! 다마를 너무 잘치기 때문이야. 우리도 술을 너무 잘 마시니까 언제나 술이지.”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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