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여행책

먼 북소리

by mariannne 2004. 2. 4.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ㅣ 문학사상사)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 물론 작가 하루키가 여행을 떠나기에 충분한 이유다. ‘어느 날 새벽, 잠에서 깨어나 문득 도망가기로 결심한’ "경마장의 오리나무" 주인공이나, ‘출발하기 위해서 출발한’ 독일 유학생 전혜린이나, 일에 대한 열정이 무뎌질까 걱정하며 ‘그냥 떠나자’고 한 미애와 루이 커플이나 다들 아주 심플하게, 그래서 더 멋지게 떠난다. 많은 사람들이 ‘먼 북소리’를 듣고도 떠나지 못하지만 하루키는 떠났다. 이렇게 좋은 여행기를 남기기 위해서!

7년도 더 전인 걸로 기억하지만, 분명히 이 책을 읽었다. 헌데 다시 사서 읽으니 모든 것이 새롭다. 무척 좋은 느낌이다. 꽤 많은 분량이라 자기 전에, 점심 시간에,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그리고 부엌에서 라면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줄기차게 읽었는데, 집중이 안될 때는 그냥 페이지를 넘겼다. 어차피 몇 년 후에 다시 읽을 것이고, 그 때 또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될 것이 벌써부터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가 잘 모르는 그리스, 그리고 반대로 너무 유명한 이탈리아 여행기다. 아니 여행기라기 보다는, 여행지에서 쓴 에세이다. 하루키의 다른 책들은 책장을 넘기면 단어들이 눈에 쏙쏙 들어와 빨리 읽고 싶어지는데, 이 책은 외국 지명이나 이름 때문인지, 쓱 훑어보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자세히 읽다 보면 이 책만큼 재밌는 게 없다. 몇 번이나 혼자 킥킥대고 웃게 된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거나, 아니면 최소한 표지와 간략한 내용이라도 보고 이 책을 읽으면 더 실감날 것 같다.

'[리뷰]여행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무나 느긋한 휴식 스케쥴  (0) 2004.07.09
삿포로에서 맥주를 마시다  (0) 2004.03.08
파리의 보물창고  (0) 2003.12.21
LOVE&FREE  (0) 2003.12.10
미애와 루이, 318일간의 버스여행 2  (0) 2003.01.1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