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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by mariannne 2008. 1. 28.

그리스인 조르바 | 원제 Zorba the Greek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ㅣ 열린책들)

그리스인 조르바는 돌쪼시, 광부, 행상, 옹기장이, 비정규 전투 요원, 산투리장이, 볶은 호박씨 장수, 대장장이, 밀수꾼에 감옥도 몇 번 갔다 왔고, 결혼은 공식적으로 한 번, 비공식적으로는 천 번, 아니 3천번 쯤 했다는, 자유인이다. 물레를 돌리는 데 걸리적거려 왼쪽 새끼손가락을 도끼로 잘라버리고, 돈이 모자라 버찌를 실컷 먹을 수 없어 자꾸 생각이 나자 밤중에 아버지 주머니를 뒤져 은화 한 닢을 훔쳐 버찌 한 소쿠리를 구역질이 날 때까지 먹고 완전히 잊어버렸다는, 같은 식으로 담배나 술도 그랬고, 고향이 너무 그리워 '목젖까지 퍼 넣고 토해 버렸'다는, 예순 다섯의 자유인이다. '책'에서 인생을 찾으려는 저자에게 느닷없이 다가온 조르바는 '그 많은 책을 쌓아 놓고 불이나 싸질러 버리라'고 말한다. 앙드레 지드가 "지상의 양식"을 통해 '책을 던져 버리라'고 말한 것처럼. 

'왜 사람들은 죽는 것일까요?'라는 조르바의 질문에 저자가 대답을 못하자, 조르바는 "... 아니, 두목, 당신이 읽은 그 많은 책 말인데...... 그게 뭐 좋다고 읽고 있소? 왜 읽고 있는 거요? 그런 질문에 대한 해답이 책에 없다면 대체 뭐가 씌어져 있는 거요?"(p.415)라고 묻는다.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지만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고,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으로 고스란히 잔뜩 부풀어 있'(p.99)는 사람이다.

저자인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만난 이 매력적인 사내 조르바는 실존인물이다. 번역을 한 이윤기 씨가 진로 소주를 들고 카잔차키스의 무덤을 찾았을 때, 크레타 사람인 안내자는 '한 달 전에 조르바의 딸도 참배하고 갔노라'고 말했단다. 조르바는 책을 불 싸질러 버리라고 했지만, 그 책이라는 것 덕분에 이렇게 조르바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으니 그렇게 쓸모없는 건 아닌 것 같다. 조르바로부터 '아무리 봐도 여문 것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들은 서른 다섯의 저자는, 조르바를 만나고부터 '깡그리 낭비하고 만 인생'을 생각했고, '진리를 발견한 사람은 조르바'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고 만사 다 팽개치고 '진리를 발견하러' 떠나지는 못하겠지만.

책 속 구절 :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야망이 없으면서도 세상의 야망은 다 품은 듯이 말처럼 뼈가 휘도록 일하는 것......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 성탄절 잔치에 들러 진탕 먹고 마신 다음, 잠든 사람들에게서 홀로 떨어져 별은 머리에 이고 뭍은 왼쪽,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해변을 걷는 것...... 그러다 문득, 기적이 일어나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동화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p.186)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어디 그 이야기 좀 들읍시다. 요 몇 년 동안 당신은 청춘을 불사르며 마법의 주문이 잔뜩 쓰인 책을 읽었을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종이도 한 50톤 씹어 삼켰을 테지요. 그래서 얻어 낸 게 무엇이오?"
나는,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지식도, 미덕도, 선(善)도, 승리도 아닌, 보다 위대하고 보다 영웅적이며 보다 절망적인 것, 즉 신성한 경외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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