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소설

고르비 전당포

by mariannne 2007. 12. 16.

고르비 전당포
(장정일 저 | 랜덤하우스코리아)

'한 우물을 파지 못하고 이런저런 장르를 집적거리는 바람둥이같은 작가가 되고 말았다'는 장정일이 '끝내 순정과 열정을 바치고 싶은 데'가 있다며 고백한 것은 '희곡'이라는 장르다. '지금까지 내가 쓴 소설들을 희곡이나 시나리오로 각색하고 또 희곡들을 소설로 재창작하는 작업을 통해 소설 · 희곡 · 시나리오의 특성을 여실히 간파'했고, "희곡을 쓸 때 의식해야 하는 여러 가지 극작 규칙과 제약은, 쓸 때는 힘들지만 어느 순간의 극적 폭발을 통해 노고를 보상받게 해 준다"(p.271)고 쓴 것처럼 수줍음과 오만함을 동시에 지닌 그의 글은, 특히 '희곡집'에서 더 빛날 거라는 기대로 구입해버렸다. "긴 여행"이 나온 지 십 년이 넘어서 출간된 그의 이 두 번째 희곡집에는 "일월" "해바라기" "고르비 전당포" 등 세 편의 희곡이 실려 있다.

"중국에서 온 편지" "보트 하우스" "너에게 나를 보낸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 같은 장정일의 소설을 이미 읽은 독자라면, 그의 전작 소설들에서 조금씩 본 익숙한 장면이 삽입되어 있고, 따라서 오래 전 만났던 반가운(?) 인물들이 다시 종횡무진 등장하는 걸 발견하게 된다.  "일월"에서는 진시황과 부소가, "해바라기"에서는 작가와 여성팬들이 등장하고, "고르비 전당포"에는 전당포 주인과 타자기, 인간 저울이 등장한다. 각각의 희곡 말미에는 설명글을 써 놓았는데, 독자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김인의 집을 방문하는 여성들, 예컨대 여기자 · 출판사 여직원 · 소녀 팬은 그의 냉장고를 가득 채워 줄 쇼핑 봉지를 안고 오며, 우유 아줌마는 우유 상자를, 그리고 어머니는 밀감을 치마폭 가득 싸안고 온다"는 것에 대해, "그것은 여성은 곧 '먹을거리'에 불과하다는 맥빠진 은유를 전달하는 것으로 오해되기 쉬운데, 작가가 겨냥했던 것은 김인이 몸담고 있는 물질세계의 빈곤을 의미하고자 했다"(p.172)는 등의 친절한 해설을 덧붙인 것이다. 오랜만에 나온 장정일의 희곡집이라서 즐겁게 읽긴 했지만, 사실 희곡이라는 장르의 재미를 어디서 발견해야 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리뷰]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뻬루 마을 사람들  (0) 2008.01.14
걸 Girl  (0) 2007.12.23
프러포즈는 필요없어  (0) 2007.12.15
마돈나  (0) 2007.12.15
퀴즈 쇼  (0) 2007.11.1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