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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여자의 빛

by mariannne 2015. 10. 25.


여자의 빛

로맹 가리 (지은이) | 김남주 (옮긴이) | 마음산책 

원제 Clair de femme (1977년)


로맹 가리이면서 에밀 아자르이기도 한 작가가 예순이 넘은 나이에 쓴 소설이다. 로맹 가리는 주인공 미셸을 통해 '여자'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닌 남자의 삶을, 아주 우아한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마흔 다섯의 항공기 조종사 미셸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불행에 취해 있'던 그날,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난다. 마흔세 살의 리디아. 마침 그 여자도 불행 속에 있었다.  


"택시 문을 열고 내리다가 나는 그 여자와 부딪쳤다. 여자가 들고 있던 꾸러미에서 빵, 달걀, 우유가 인도 위로 흩어졌다. 우리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부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p.7) 


둘은 잠깐 대화를 나눈 후 헤어진다. 남자는 '품위'나 '예의' 때문에 그녀를 놓쳐버릴까 걱정이었고, 여자는 아닌 척 했지만, 사실 그에게 주소를 적어주면서 자신의 집에 찾아오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잠시 후 남자가 다시 그 여자의 집에 찾아갔을 때 여자는 갑자기 흐느껴 운다. 6개월 전에 그녀에게 닥친 불행은, 여전히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난 행복해지고 싶은 생각 따윈 전혀 없어요" 


미셸은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에서 멀리 달아나려는 중이었고, 리디아는 남편과 딸을 잃은 슬픔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룻밤 동안 일어난 둘의 이야기는 사실, 공감하기도, 그냥 이해하려 하기에도 힘들다. 번역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낯선 정서, 그리고 책 속에서나 있을 법한 말투로 대화하는 두 사람 때문이다. 너무나 이국적인 장면들, 이를테면 분홍색 푸들과 침팬지가 파소도블레(라틴아메리카의 춤)를 추는 무대, 리디아의 남편 생일을 기념하는 러시아식 파티 따위도 그랬다. 오래도록 한 여자만을 사랑한 남자가 '여자의 빛' 없이는 못산다며 처음 만난 여자와 밤을 보낸다? 그가 보기에 지나가는 보통의 남자들은 '사랑을 구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듯'한, 품위 있고 자존심 강한 사람들이고, 보통의 여자들은 '건조한 눈빛에서는 기도의 빛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목수정 씨의 '야성의 사랑학'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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