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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봄에 나는 없었다

by mariannne 2015. 11. 1.



봄에 나는 없었다 -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은이) | 공경희 (옮긴이) | 포레 | 2014-01-30 | 원제 Absent in the Spring (1944년)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아닌 그냥 소설이라니. 그녀는 추리소설 팬들이 혼란스러워하지 않도록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장편소설을 여섯 편 남겼다. 그 중 하나인 이 소설은, 한 중년 여성의 이야기다. 


주인공 조앤 스쿠다모어는 40대 후반의 여성이다. 세 아이를 모두 결혼시키고 변호사 남편과 둘이 영국의 한 도시에 살고 있다. 결혼해서 바그다드로 이사한 둘째 딸이 아프다는 소식에 비행기를 타고 그  집에 갔다가 기차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하룻밤 묵은 숙소의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친 여고 동창 블란치 해거드는 너저분하고 늙수그레한 차림에, '적어도 예순 살은 되어 보"여 그녀를 놀라게 했다. 학창시절에 그토록 사랑스럽고 인기 많은 아이였다는 걸 생각하자 블란치가 측은해보이기까지 했다. 조앤 자신은 여전히 날씬하고, 얼굴은 팽팽하고, 흰머리가 거의 없는, 활기찬 외모라 더 그랬다. 몇 번이나 이혼을 한 블란치와 달리 든든한 남편과 함께 세 아이를 잘 키워 결혼시킨 자신의 인생이 성공적이라는 사실에 안도감이 느껴졌다.  


블란치와 헤어지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는 기차 여행길.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에 조앤은 한적한 역에서 발이 묶이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기차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낸다. 여행지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구경거리가 없는 곳이었다.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것이 없었다. 성공적인 인생을 꾸려왔다고 생각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니, 헛점이 많았다. 누구나의 인생인들 안그럴까. 그녀 역시 문제 투성이의 상황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며칠 후 기차가 도착했고, 그녀는 아무 일도 없던 듯이 문명의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   


난생 처음으로 오랜 시간동안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되면, 사람들은 어떤 심정이 될까? 고통스러운 진실은, 그럼에도 직시하는 게 좋을까, 이왕이면 모르고 지나치는 게 좋을까? 아니, 그 전에 진실이라는 게 어떻게 정말, 진실이라고 알 수 있을까? 애거사 크리스티의 이런 소설, 흥미롭다.     



책 속 구절: 
"에이버릴, 결혼이 뭔지 정확히 알고 있니?"
에이버릴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결혼이 성스러운 예식이라고 말씀하시려는 건가요?"
"아니, 그걸 성스럽다고 볼 수도 있도 아닐 수도 있지. 내가 하려는 말은 결혼이 계약이라는 거다." 로드니가 말했다. 
"아."
에이버릴은 조금, 아주 조금 놀란 듯했다. 
"결혼은 두 사람이 맺는 계약이지. 두 사람은 온전한 능력을 갖춘 성인이어야 해. 또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아야 하고. 결혼은 동반자 간의 계약 같은 거고, 두 배우자가 그 계약의 조항들을 지키겠다고 맹세하는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의 곁을 지키겠다고 맹세하는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의 곁을 지키겠다고.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부자일 때나 가난할 때나 좋은 일이 있을 때나 나쁜 일이 있을 때나. 교회에서 말로 약속하고 사제가 승인과 축도를 하지만 그럼에도 그건 계약이야. 신앙심이 깊은 두 사람이 맺는, 여느 합의처럼 계약이라고. 일부 의무 조항들은 법적 강제력이 없지만, 책임을 맡은 두 사람에게는 구속력이 있지. 난 네가 이에 대해 동의할 거라 생각한다면." (p.15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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