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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네메시스

by mariannne 2015. 10. 25.


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은이) | 정영목 (옮긴이) | 문학동네 

2015-05-29 | 원제 Nemesis (2010년) 


이 작품은 미국에서 2010년에 출간됐고, 작가는 이를 마지막으로 2012년 절필을 선언했다. 이제 더이상 필립 로스의 작품은 볼 수 없을지 모른다. 한국독자들에게 좀 위안이 되는 얘기라면, 아직 번역출간될 작품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제목만 봐서는 이 소설의 내용을 알 수 없다.  "네메시스Nemesis"는 네이버사전에 대략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 국어사전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율법(律法)의 여신. 절도(節度)와 복수(福數)를 관장하고 인간에게 행복과 불행을 분배한다고 한다.

● 프랑스어 사전 - [그리스신화] 네메시스 (인간의 오만·불손한 행위에 대한 신의 노여움·벌을 의인화한 여신) 

● 라틴어 사전 - Némĕsis [여성명사] 교만한 자•부정축재자 따위를 벌하는 복수의 여신.

● 스페인어 사전 - (희랍 신화) [징벌과 보복의 여신] Némesis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네메시스는, “운명, 불운, 어떤 이를 골라 희생자로 만드는 극복할 수 없는 힘”이라고.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미국에서 유행한 전염병 '폴리오'와 이를 겪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2015년 여름 대한민국에 공포를 가져온 메르스처럼, 1944년 6월 초, 미국 뉴어크 지역에 '폴리오'(급성 회백척수염)가 창궐할 조짐을 보였다. 1916년 미국 북서부에서 유행한 병이 2만 7천의 감염자와 그 중 6천 명의 사망자를 낸 이후 최대의 위기였다. 전염성이 아주 높지만, 정확한 감염 경로를 알 수 없어 그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않고, 부모들은 아이를 '도시의 더위를 완전히 벗어나 산이나 시골의 여름 캠프에 보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다.    

주인공 버키 캔터는 스물세 살 젊은이로, 시력이 좋지 않아 또래 젊은이처럼 참전하지 못하고 체육 선생이 되어 그 해 여름 놀이터 감독으로 일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방학이라 매일 놀이터에 나와 운동을 했고, 7월이 되자 그 중 두 명이 폴리오에 감염되어 3일 만에 죽었다. 도시에서 떨어진 산에서 여름캠프 교사로 일하고 있는 여자친구가 버키 캔터의 일자리를 마련했다며 도시를 떠나 당장 와달라고 청하지만, 그는 쉽게 떠날 수 없었다. 양심의 문제였다. 친구들이 전쟁터에 나가 싸우고 있는 동안 그는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며 유행병의 공포를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또 놀이터 아이들 중 세 명이 폴리오에 감염되었다. 

버키 캔터는 여자친구에게 청혼을 하고, 마침내 전염병이 도는 마을을 뒤로 하고 폴리오 청정지역인 캠프장으로 간다. 폴리오는 계속되고, 마을에서는 또 다른 아이들이 죽었다. 

소설은 버키 캔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계속해서 주인공인 그를 '캔터 선생님'이라 쓰고 있다. 왜 주인공을 부를 때 그런 존칭을 쓰는 걸까. 전지적 작가 시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놀이터에서 노는 한 아이(아널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로 가면, 27년 후 아널드가 우연히 버키 캔터를 만나 당시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버키를 "우리 소년들 모두에게 우리가 아는 가장 모범적인 예이자 우리가 숭배하는 권위였으며, 느긋하고, 친절하고, 공정하고, 사려 깊고, 안정적이고, 상냥하고, 정력적이고, 늠름하고, 확신에 찬 젊은 남자"(p.276)로 기억하고 있었다. 


버키 캔터의 삶을 보자면, 네메시스는 작가가 말한것처럼 "운명, 불운, 어떤 이를 골라 희생자로 만드는 극복할 수 없는 힘"일 뿐이지, "복수의 여신"이라 볼 수는 없다. 전염병의 희생자는, 그 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책 속 구절: 

[...] 단지 여름철 유행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앨런이 그 희끄무레하고 장식이 없는 소나무 상자 안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상자 안에. 열두 살짜리가 영원히 열두 살짜리로 머물게 되는 상자 안에. 나머지 사람들은 매일 나이를 먹으며 살아가지만, 그는 늘 열두 살이다. 수백만 년일 흘러도 그는 여전히 열두 살이다. (p.68~69)

그래, 물론 그는 해안에 내려가 혼자 며칠을 보낼 수도 있었다. 사실 그것은 여름이 시작될 때 그가 계획했던 일이기도 했다. [...] 이틀 동안 실컷 다이빙을 하면 아픈 아이들에게 몰두했더너 마음에서 일시적으로나마 벗어나고 케니 블루먼펠드의 히스테리 섞인 비난으로 인한 흥분을 잠재우고, 또 어쩌면 하느님에 대한 적의도 머리에서 씻어낼 수 있을지 몰랐다. (p.135~136) 


[...] 그는 마샤와 약혼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있는 곳을 외면하고 정상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정상적인 삶의 안전과 예측 가능성과 만족을 끌어안으러 달려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전화를 끊자 그의 이상들이 그와 맞서고 있었다-할아버지가 그에게 길러준 정직함과 힘이라는 이상, 그가 제이크 그리고 데이브와 공유했던 용기와 희생이라는 이상, 어린 시절 그 스스로 갈렀던, 사기꾼 아버지의 기만적 성향을 넘어선 곳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즉시 다시 방향을 틀어 여름 동안 그가 하겠다고 계약했던 일로 돌아가라고 요구하는 사나이의 이상. 

어떻게 방금과 같은 짓을 할 수 있었을까?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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