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비소설

고독의 발명

by mariannne 2014. 4. 25.

 

고독의 발명
폴 오스터 (지은이) | 황보석 (옮긴이) | 열린책들 | 2001-07-15 | 원제 The Invention of Solitude

 

어느 일요일 아침, 폴 오스터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이혼 후 15년을 혼자 살다 갑작스럽게 떠나신 것이다. 작가는 아버지의 짐을 정리하며 옛 기억을 떠올린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자신은 아버지에게 어떤 아들이었는지를 추억하고, 아버지의 ‘고독’을 생각한다. 작가가 태어나기도 전에 집안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제외하면, 그의 추억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의 풍경-속을 잘 알 수 없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무심함, 친하지 않은 부자 사이의 사소한 대화 같은 것-이다. “보이지 않는 남자의 초상화”는 이제는 더 이상 없는 아버지를 떠올리고, 그의 낡은 소지품을 하나씩 꺼내보는, 자전적 소설 같은 에세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만일 우리가 다른 누군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단지 그 사람이 자기를 알리려고 하는 범위 내에서이다. 어떤 남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 추워. 아니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대신 떠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그 사람이 춥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떨지도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것이 어정쩡한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은폐되고 회피된 상황에서는, 그저 관찰이나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관찰한 것을 이해하느냐 못 하느냐는 전혀 별개의 일이다.
나는 어떤 가정도 하고 싶지 않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같지도 않았다. 마치 그의 내면적인 삶이 자신마저도 회피한 것 같았다.” (p.41)

 

이 책에 실린 두 번째 작품은 “기억의 서”이다. 여기서 작가는 ‘그’이자 ‘A’가 된다. 그는 1979년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뉴욕 배릭 가 6번지의 조그만 방에서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은 얼마 전 다녀온 암스테르담의 ‘안네 프랑크의 집’ 박물관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 “그녀는 이 방에서 일기를 썼다.”(p.146) – 그 안네 프랑크가 머물던 방, 반 고흐가 아를에서 완성한 그림 “침실”이 보여주는 방, 전쟁 기간 동안 나치를 피해 한 남자가 숨어 있었고, 20년도 더 지난 후 그 아들이 우연히 머물게 된 파리의 한 다락방, 그리고, S의 방.

 

1965년 파리에서 우연히 알게 된 S의 너무 작은 방, 그 방은 기차의 2등칸 객실보다 약간 큰 정도지만, 거기에는 ‘온 생애의 잔해’들이 가득 채워있었다. 방 한구석 선반에는 하루를 보내는 데 필요한 모든 물건이 다 놓여 있고, 생존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있었다. S와의 인연은 몇 년 계속됐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혹시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인) S가 죽었을까 두려워 찾아가지 못한다. 작가는 “자신이 극단적인 감금 상태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p.166)다.

 

“기억의 서”에서 그는 파스칼의 말을 반복하여 인용한다. -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가지 것, 즉 자기 방에서 조용히 머물 수 없다는 데서 유래한다.” – 글은 방 안에서 조용히 시작되고, 거기서 마무리된다. ‘누군가의 방’이 등장하고, 폴 오스터 작품의 중요한 메시지인 ‘우연’의 이야기도 반복된다. 이 글은 폴 오스터가 기억하는 과거의 이야기를 순서 없이 늘어 놓은 것이다. 조금은 당황스럽게 내용이 전개되고, 친절하지도 않다. 이야기의 조각들이 다른 것들과 ‘우연’하게도 이어지기도 한다(이를 테면, 고래 배 속에 들어간 요나와 상어 배 속에 갇힌 제페토 이야기. ‘다니엘 오스터’라는 이름을 가진 두 사람 같은 것). 왜 이런 에세이를 썼는지는 알지 못하겠다. 기억을 붙들어놓기 위해서? 고독을 말하기 위해서? 
 

“[…] 모든 책은 고독의 이미지이다. 그것은 우리가 뽑아내어 내려놓고 펼쳤다 닫을 수 있는 유형적인 물체이며, 거기에 적힌 글들은 설령 여러 해는 아니더라도 여러 달에 걸친 한 인간의 고독을 대변하는 만큼, 우리는 어떤 책에서 읽는 하나하나의 단어에 대해 우리 자신이 그 고독의 입자와 직면하고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남자가 혼자 앉아서 글을 쓴다. 그 책이 외로움을 이야기하건 친교 관계를 이야기하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고독의 산물이다. A는 자기 방에 앉아 다른 사람의 책을 번역하는데, 그것은 마치 그 남자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 그 고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p.239~240) 

 

 


 

'[리뷰]비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리에서 온 낱말  (0) 2015.09.05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현실 세계 편  (0) 2015.09.05
뉴욕 이야기- 고담 핸드북  (0) 2013.11.29
지식인의 서재  (0) 2013.10.30
파리에 물들다  (0) 2013.09.2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