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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1인분 인생

by mariannne 2012. 4. 16.

 

1인분 인생: 진짜 나답게 살기 위한 우석훈의 액션大로망
우석훈 저 | 상상너머

 

40대 중반인 우석훈이 ‘40세’와 ‘일상성’이라는 주제로 쓴 글을 정리한 에세이집이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이고 “나는 꼽사리다”으로 알려진 경제학 박사가 ‘부귀영화’(!)따위를 마다하고 유유자적하며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 시대가 ‘명박시대’라는 고통이 있긴 하지만, 그리고 한국의 40대(특히 ‘남성’)는 이래저래 ‘정신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비루하게’ 살아가긴 하지만, 그래도 세상을, 일상을 좀 명랑하게 얘기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내 놓은 책이다. 태권도 사범인 유단자 아내와 고양이 ‘야옹구’와 함께 사는 즐거운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이런 생각도 든다. 그는 어쨌거나 마음만 먹으면 어디에서든 한 자리 차지해서 일할 수 있는 유학파 박사가 아닌가? ‘인생의 의미도 찾고 싶고 일상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그가 “행복은 진실로, 돈이나 지위나 학위나 그런 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라며 전하는 말들은 자칫 위화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없겠지만, 그는 정말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사는 거 같다. ‘자연인’으로 순리대로 살아가는 삶, 밥 굶지 않고, 가급적 남을 도우며 살아갈 정도의 넉넉함을 바라는 삶.
 
그는 ‘불혹不惑’이라는 나이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는 의미 대신 ‘혹시나’ 하는 일이 없어지는 것, 그게 바로 ‘불혹’이라고 했다. 마흔이 ‘불혹’의 나이라면 그게 더 맞겠다.

 

 

책 속 구절:

사람이 나이 마흔이 되면 조금 더 자연에 가까워지고, 조금 더 순리에 가까워진다는 건, 한국에서는 개뻥이다. 마흔이 되면 점점 더 갖고 싶은 욕심에 빠지는 것 같다. 명분이야 국가를 위해서든, 민족을 위해서든, 혹은 신념을 위해서든, 그거야 갖다 붙이는 거고 결국은 “내가 뭐라도 되어야 쓰겄다”이다. 그런 큰 명분을 찾지 못한 사람은, “내 노후를 대비해야겠다”는 그런 소탈한 명분이라도 찾아서 손에 조금이라도 더 쥐는 법을 좇는다. 즉, 자신과 가족 혹은 자신의 노후를 위해 더 탐욕스럽게 갖고, 더 악착같이 승진해야 할 이유를 사회적으로 찾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마흔이 되면서 생각한 건, 이제는 조금씩 내려놓을 시간이라는 거다. 옛날 나이로 치면, 마흔이면 해볼 만큼 해보고 누릴 만큼 누린 나이다. 이때부터는 내려놓기 시작해야, 나머지 삶이 즐거워질 수 있고 평온해질 수 있다는 게 내 믿음이다.
진리라는 게 돈의 법칙이나 권력의 법칙과는 다르다는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려놓으면 내려놓을수록, 진리를 조금이라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 이게 삶의 오묘함이다. (p.104)


 

[…] 우리 집에는 “사업은 하지 말라”는 가훈이 있다. 물론 운동도, 데모도, 아무튼 하지 말라는 게 정말 많은 전형적인 ‘가늘고 길게’의 “조선일보” 애독자 집안이다. 내가 대학교 2학년 때에 결국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런 집안에서 하루만 더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기도 했고, 아버지가 데모하려면 호적에서 이름 파라고 하셔서, 알았다며 다음 날 바로 집에서 나왔었다. (p.234)


 

그런 우파들을 유럽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다. 어느 우파의, 부모가 물려준 대저택에 초대받아 간 적이 몇 번 있는데 그때마다 놀란 게 이런, 책을 너무너무 많이 읽어서 도대체 모르는 게 뭐야 싶었다. […] 그런 우파를 이기기 위해 좌파도 더 죽어라 하고 책을 읽고 더 날카롭게 공격해야 하고 그런 공격으로부터 방어를 하려니까 우파들도 더 강해지고 더 독서를 많이 하고.
한국에서는 아마 이어령이나 남재희 같은 옛날 양반들이 그렇게 살고, 우파에서 한 명 더 꼽아보자면 김훈 정도? 예전에는 이계안이 날 잔뜩 긴장하게 만들었는데, 그도 요즘은 최소한 노회찬과 한자리에 앉아서 세상의 미래에 대해서 걱정할 정도는 되니 내가 새삼 긴장할 건 없고.
그 밑에 있는 한국의 우파들은 1주일에 세 번씩 골프장에 가고, 두 번은 룸살롱에 가느라고, 아주 스케쥴파가 꽉꽉 찬다. […]
한국 사회과학과 인문학은 좌파들 아니면 독서목록이 다 무너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좌파들이 특별히 책을 더 읽어서가 아니라 이번 정권에서 워낙 좌파들 사회생활을 꽁꽁 막아놨으니 책 내는 것 외에는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책을 내려면 당연히 앞에 나온 책들도 읽어야 하고, 좋든 싫든 먹고살기 위해서 책을 볼 수밖에 없다. (p.29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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