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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88만 원 세대

by mariannne 2007. 10. 27.

88만 원 세대
(우석훈, 박권일 저ㅣ 레디앙)

진보 계열 인터넷 신문 레디앙에서 발간한 첫 번째 책.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는 카피가 이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대한민국처럼 한 개인의 '독립'이 한없이 늦어지는 나라에서, 어떻게 되겠지... 하며 마냥 넋놓고 있는 20대들에게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다. 표지에 나와 있는 남자가 고개를 들고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을 읽는 내내 목덜미가 결린다.

이 책은 16세의 소녀가 '남자친구와의 동거'를 선언했을 때 대한민국 집안에서 당연히 나올 법한 '집안 망신'과 '미친 년'을 비롯한 단어들과 그에 반해 다른 나라(유럽 사회)의 분위기는 어떤지에 대해 설명하며 시작된다. 로미오와 쥴리엣도, 춘향이와 이도령도 16세를 전후하여 사랑에 빠졌지만, "그런데, 지금의 청소년들은 거의 3천 년 만에,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서 모든 걸 유보하도록 집단적인 통제를 받고 있다. 만일 오늘의 청소년들이 지난 3천 여 동안 또래의 집단이 누렸던 자유를 가지고 있지 못한 이유가 윤리나 규범의 억압 때문이라면, 경제학이 관심을 가질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돈이 없다는 이유로 권리가 통제되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경제학의 대상이 된다."(p.32) 사랑을 제약받고 있다는 것 이상의 '상상도 하지 못한 더 큰 음모'(p.33)가 있으니, 이 책은 그에 관해 전하며 '짱돌을 들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은 '특정 세대의 독립이 늦어지는 현상, 다시 말해 사회적인 지체 현상이 발생'(p.62)하는 나라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보호'라는 이름 아래 오히려 성인이 되지 못하도록 강요받는 세대'이며, "이런 지체 현상은 개인적인 불행이기도 하지만, 시스템 전체로 볼 때에도 급격한 출산율 저하와 퇴행적 성인의 등장과 같은 원치 않는 결과들을 발생시킨다."(p.62) 저자는 "어떤 통계나 경제학 교과서 혹은 인류학 자료를 봐도, 지금 우리나라처럼 한 세대의 취업 및 결혼과 같은 사회적 활동이 극단적으로 지체되고 있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p.88)고 하는데, 지금의 20대는 이에 대해 앞선 세대에 강력히 불만을 표시해야 할 뿐 아니라, 스스로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프랑스의 68세대(68년 5월, 프랑스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대학생들과 이에 동조해 시위와 청년문화를 이끌어갔던 당시 유럽과 미국 등의 젊은 세대 - 네이버 백과사전)는 대학 국유화를 쟁취하는 등 사회적인 변화를 시도했지만, 그 유명한 우리의 386 세대는 '대학 개혁에 대해 거의 아무런 청사진이나 의미 있는 노력을 개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학벌사회를 더욱 강화시키며 교육 엘리트주의를 강화시키는, 일종의 역사에 대한 배신을 행한 세대'(p.177)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천유로 세대, 미국의 빈털터리 세대, 일본의 비참 세대, 그리고 한국에는 88만 원 세대가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그늘 아래 고통받고 있는 세계의 젊은이이들에게 붙여진 절망의 호칭'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는 지금의 20대들이 앞으로 상위 5%만 '단단한 직장'을 가질 수 있으며 나머지는 이미 인구의 800만을 넘어선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될 것이고, 비정규직 임금 119만 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를 곱한 소득이 '88만 원'이라는 점에서 '88만 원 세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의 20대는 '우리나라 여러 세대 중 처음으로 승자독식 게임을 받아들인 세대'이며, 탈출구가 없으니, '이전 세대인 386이 그랬던 것처럼 바리케이드와 짱돌을 들라'고 한다. 레디앙에서 나온 책이라는 걸 감안하고 보더라도, '토플'이나 파고 들고 일찌감치 '펀드'나 '주식'에 몰두할 때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 책에서 말하는 '절망의 시대'의 '희망'은 무엇인가. 저자는 '스쿠루지 영감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떠났던 것과 비슷한 상상 속의 여행'을 하며 한 가지씩 해법을 제시한다. 제한적인 사교육 금지와 사교육 종사자들을 공교육 체제로 흡수하여 교사들의 숫자를 대폭 늘리는 것, '지금의 국공립 대학만으로 작은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이 대학들 사이만이라도 서열을 없애는'(p.228) 것, '정리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대신에 정부가 노동자에 대한 재교육에 지금보다 10배 정도 더 많은 돈을 들이고 창업기금 같은 것을 지금의 10배 정도로 늘'(p.235)리는 것. 이외에도 여러가지 방안을 제시하는데, 방안의 현실성이나 타당성보다는 지금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더 필요할 것이다.

"88만 원 세대"는 비정규직에 관한 얘기이고, 그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20대에 관한 얘기다(앞으로 대한민국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10대는 잠시 보류다). 다니엘 핑크가 말한 차세대는 말이 좋아 '프리 에이전트의 세대'일까. 그나저나 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서 보이지 않는 기이한 현상' 이다지도 많은 것일까.

책 속 구절 :
유럽의 경우는 비정규직화를 받아들인 대신에 실업보험을 강화했고, 일단 비정규직으로 전락한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비정규직에 놓여있게 하지 않기 위해서 평생공부 체계를 대대적으로 정비해서 사회공공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이 문제를 풀었다. 스위스나 프랑스의 경우에는 잘 발달된 지역자치단체가 직접 나서서 지역고용이라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었는데, 문제는 세계화에 의하여 발생한 국제적 경쟁의 강화를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으로 완화시킬 그 어떤 여과장치도 없이 지금의 20대가 직접 몸으로 겪어내게 된 것에 있다. (p.234)

...가격 경쟁력을 선택한 프랜차이징이 품질 경쟁력은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가격 경쟁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은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다. 이 현상은 경제학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데, 예를 들면 유럽에서는 50년쯤 영업을 했던 스테이크 하우스보다 프랜차이징 스테이크 하우스의 제품이 당연히 싸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역전이 되었다. (중략)

시장의 특징상 "비쌀수록 사는" 사치재처럼 프랜차이징 업체를 소비자들이 받아들이고 이다는 것이 정확한 진단일 텐데, 이것은 문화현상이기 때문에 경제학에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중략) ... 쉽게 말하면 "싸구려 음식을 비싸게 속여 파는" 일이 너무 쉽게 우리나라에서는 벌어지는 셈이다. 동경보다 비싼 서울의 스타벅스 커피 가격은 이런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 프랜차이징은 비쌀수록 우리나라에서는 잘 된다. 이 경우에는 경제학의 수단을 가지고 어떻게 손을 써볼 도리가 없는 현상이다. (p.250)

현재 한국 경제는 큰 공륭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큰 것'들의 약탈장으로 변해버렸는데, 원래 자본주의 경제는 그냥 내버려두면 이렇게 된다. 이걸 사람들이 문화라는 힘으로 극복하는 것이 유럽형 경제라고 할 수 있고, 법원이 직접 나서서 약간씩 완화시키는 것이 미국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역 공동체가 80년까지 이런 일을 했었고, (중략) 박정희 대통령만큼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서 매달렸던 대통령도 별로 없고, 김대중 대통령은 아예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벤처 열풍을 주도하기도 했다. (중략)

중앙정부라는 눈으로 본다면 이런 일을 안했던 것은 노무현 정부가 처음이다. 세계적 독과점화와 프랜차이징 강화는 우리나라 말고도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지만, 우리나라처럼 단기간에 공룡들만 살아남는 시스템으로 변한 경우는 없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의 비극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공룡들의 비극'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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