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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by mariannne 2007. 11. 18.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우석훈 저 | 생각의나무)

'명랑 공산주의자'가 본 대한민국

서문에서, 책을 내는 게 '부끄럽다'라든지, 혹은 자신은 머리가 나쁜 '대기만성형'이라는 걸 여러 번 강조하는 경우 치고 부끄러울 만큼 형편없는 책이 별로 없다. 오히려 화려한 글발에 대한 사전 경고 정도로 느껴질 뿐이고, 이 책 역시 그렇다. '시건방지다는 손가락을 받고 싶지 않았다'는 저자의 바람과 달리, 그런 얘기를 듣게 될 것이고, 그보다는 오히려 지지자 내지는 추종자들이 더 많이 생길 만한 글이다.

민주노동당에 당비를 내고 있는, 자칭 '낭만' 혹은 '명랑' 공산주의자라는 저자는, '우파들의 게으르고 파렴치한 행태'도 싫지만, '좌파들의 정파 놀음'도 지겹긴 마찬가지고, 무엇보다도 노무현 정권이 눈물겹도록 한심해서 이 글을 쓰게 된 모양이다(책을 낼 당시야 괜찮지만, 한참 나중에 보면 언제 썼는지가 헷갈릴테니 글마다 날짜를 좀 써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 이건 출판사의 몫일지도). '좌파든 우파든, 개혁이든 보수든'이라는 토를 달면서 '어쨌든' 좀 제대로 된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써 내려간 글이다.

저자의 눈에는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지 못한 장정일도 실망스럽고, 조정래도, 김지하도 실망스럽다. 정책 공약으로 보자면 '오세훈은 악질이고, 강금실은 천박'하다. 그의 눈에는 박노자만 진화하고 있으며, 신중현과 이상은은 다행히도 21세기로 넘어 온 사람들이다. 이처럼 사람에 대한 호오(好惡)도 명확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꼴에 대한 의견도 확실하다. '자신의 소득보다 과도하게 좋은 차량을 구매하고 장애인용 자동차였던 오토매틱을 운행하면서 섹슈얼 판타지를 꿈꾸는 대한민국 남성들은 완전히 바보'(p.202)라며 "수동 기어 보급·촉진을 위한 기본 계획"을 세우고, '일단  소비시장에 풀리기 시작하면 소비자들이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쇠고기 베이스'를 눈으로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전국이 해법을 찾을 때까지 수년간 공포 특집이 계속된다'(p.189)며 '소비자들이 돈을 모아 쇠고기 수입분을 구매하여 폐기'하자는 의견을 내며, 다음 대선에서 "안전하고 값싼 자장면!"을 구호로 들고 나오는 후보에게 한 표를 기꺼이 주고 싶다(p.213)는 식이다. ''87년 체제니 개헌 따위가 급한 게 아니라 지금 동네 깊숙이 들어와 있는 성인오락실이 급하다"(p.245)며 일찌감치 '사행성 성인오락실 금지'나 '고리대자금 금지에 관한 법률'을 제시하고, 정부의 '이라크 파병'에 관한 결정을 자신 인생의 가장 큰 '외상성 장애의 경험'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이미 많은 사회 문제에 대해 해답을 속시원히 제시했고, 앞으로도 계속 쏟아낼 듯 싶다. 그의 글은 부단히 '정치적', 아니 '정책적'이라서 향후 그의 행보가 무척 궁금해진다. 사회에는 '문제점만 지적하는 사람'(...이 경우는 참 곤란하다)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이 구분되는데, 그는 둘 다에 해당되는 무척 긍적적이 경우니까.

책 속 구절 :
"진정성이 있지 않은가!"라는 표현을 요즘 사용하는 말로 치환한다면 가장 비슷한 것이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아닐까 싶다. 아무리 가난하고 동네에서 왔다갔다 하는 장삼이사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더라도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지 않고, 그야말로 '진정'으로 살아가지 않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진정성을 운운하며 믿고 존경하라는 말은, 사실상 하루하루를 자신만의 삶으로 채워가는 모든 생활인 그리고 그들의 '일상성'에 대한 모욕이다.
굳이 "노무현에게 진정성이 있다"는 말로 토론을 가로막는다면, "민중에게는 진실이 있다"는 선험적이면서도 무시무시한 명제를 끄집어 낼 수밖에 없다. 진정성이라는 단어는 우리말만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도 오염시키는, 언어의 공해에 해당한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p.80~81)

3만 불도 좋고 4만 불도 좋지만 가장 높은 국민소득을 올리는 나라들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국민들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나가는지 한 번 직접 보시면 정말로 우리가 갈 길이 조금 명확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취리히는 소득도 높지만 삶의 질도 몇 년째 세계 1위인 도시입니다. 그 비밀이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일지도 모릅니다.
대선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취리히도 가보시고 로잔도 가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유가 되시면 코펜하겐도 가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새로운 지평과 세계가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왕이면 육영수 여사의 딸이었다고 역사가 박근혜 의원님을 기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고단했던 한국 민중의 삶이 어떻게 스위스 국민들처럼 행복해질 수 있는지 이 봄에 진지하게 고민해보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강한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것이 결국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건국 이후 가장 부드러웠던 인물은 육 여사라고 사람들이 평가하더군요. 그리고 지금 스위스의 대통령은 마침 여성입니다. 두 번째 여성 대통령이지요. 두 분이 한 번 만나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p.23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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