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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나의 소소한 일상

by mariannne 2012. 3. 5.

나의 소소한 일상 - 다자이 오사무 산문집 (다자이 오사무 지음 ㅣ 시공사) 

"인간 실격"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 산문집.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다자이 오사무의 인생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책에 실린 "내 반생을 말한다"를 보자.

"저는 남에게는 거의 제대로 말도 못하는 심약한 성격으로, 따라서 생활력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자각하고,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지내왔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히려 염세주의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다지 사는 것에 의욕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저 한시라도 이 생활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 세상에서 하직하고 싶다고만 어릴 때부터 생각해왔습니다."(p.109~110)

다자이 오사무는 1909년 일본 동북 지방 아오모리 현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8남매의 막내로 자란 그는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자라긴했지만,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한 졸부 집안의 자식임을 부끄러워했고, 부유한 집안 배경에 대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괴로워했다. 이런 연유로 고등학교 때는 아버지의 방탕과 위선을 글로 쓰기도 하고, 도쿄대학교 불문과에 입학해서는 좌파운동에 뛰어든다.

1929년, 스무살의 나이에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고, 이듬해인 1930년에는 긴자 카페의 호스테스 다나베 아쓰미와 투신자살을 시도했지만 혼자만 살아남는다. 1935년 산중에서 다시 자살 시도, 1936년에는 오래된 연인 오야마 하쓰요와 함께 미나카미 온천에서 동반 자살을 시도했지만 역시 미수에 그친다.

1930년대 중반에 복막염으로 입원해 마약성 진통제 파비날을 처방 받고 약에 중독되어 정신병원에 수용되기도 하면서 과민 증세를 보이나 1939년 미치코라는 여성과 결혼해 안정을 찾는다. 이후 몇 년 동안 단편 소설들을 발표하며 인기를 얻고, 패전 후에는 ‘데카당스(decadance) 문학’의 대표 작가로 자리잡는다. 이때 그의 대표작인 “인간실격”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1948년 이혼 후 동거 중이던 야마자키 도미에라는 여성과 강에 뛰어들어 동반 자살을 시도, 서른 아홉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그의 인생 여정이 보여주는 소심하고 폐쇄적인 성격, 퇴폐적 반항적인 기질과 허무주의, 염세주의의 기운이 책 전반에 나타나 있다. 책 초반부의 "시정의 소란"이나 "술을 싫어하다"처럼 읽기도 쉽고, 작가의 유우머 감각마저 엿볼 수 있는 즐거운 글들도 있고, 세상의 권위나 구태의연함을 비꼬는 후련한 공감글이 있는가하면,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글도 있다. 어쨌거나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읽고 그의 '소소한 일상'이 궁금해진 사람들에게는 좋은 선물이 되겠다.

책 속 구절:
옛날 축성의 대가는 성을 설계하면서, 그 성이 폐허가 되었을 때의 모습을 제일 고려하여 도면을 그렸다. 폐허가 되고 나서 모습이 훨씬 아름답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옛날의 불꽃 만드는 대가는 쏘아 올리고 나서, 불꽃이 공중에서 펑 터지는 소리에 가장 고심하였다. 불꽃은 듣는 것. 도자기는 손바닥에 올려놓았을 때의 무게가 가장 중요하다. 예로부터 명장이라 불리는 사람은 모두 그 무게에 가장 고심했다.

그럴싸한 얼굴로 가르쳐주자 가족들은 감탄하며 듣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모두 엉터리다. 그런 바보 같은 얘기는 어느 책에도 쓰여 있지 않다. (p.48)

처음부터 그런 것은 없었다. 매에 대한 두려움, 다시 말해 세상에서 따돌림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 감옥에 대한 증오, 그런 것을 남들은 양심의 가책이라 부르고 마음 편해하는 것 같다. 자기 보존의 본능은 마차를 끄는 말이다 집 지키는 개에게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일상윤리의 뻔한 엉터리를 모른 척 답습해 나가는 것이 또 세상의 귀여움 점이니, 혈기로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 고 같은 하숙집의 샐러리맨이 내게 충고해 주었다.
아니지, 나는 마음을 추스리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는 새로운 윤리를 수립하는 거야. 미와 예지를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윤리를 만드는 거다. 아름다운 것, 영리한 것은 모두 옳다. 추함과 우둔함은 사형이다. 이렇게 나섰지만 막상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 살인, 방화, 강간, 몸을 떨면서 그들을 동경했지만 무엇 하나 하지 못했다. 일어섰다 주저앉았다. 샐러리맨이 또 나타나서 체념과 태만의 좋은 점을 역설한다. (p.16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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