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시크: 무심한 듯 시크하게 나를 사랑하는 법 (원제 : What French Women Know)
데브라 올리비에 지음 ㅣ 웅진윙스
저자가 프랑스 여자들의 ‘시크함’을 칭송하기 위해 설명하는 ‘미국 여자’들의 습성과 행태는 한국 여자들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
요컨대 프랑스 사람들은 대부분 규칙을 위한 규칙이나 사랑과 성생활을 조종하려는 규칙을 거부한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미국식 데이트 개념이 없기 때문에 데이트의 비밀, 기본원칙, 노하우, 테크닉, 기타 데이트 관련 원칙들이 홍수를 이루지 않는다. 자기 마음대로 인생을 즐긴다. 얼마나 자유로운 영혼인가.
반면에 우리는 남자를 만나고, 데이트하고, 결혼하고, 이혼하고, 재혼하고, 변신하고, 옷을 입고, 정리하고, 몸을 만들고, 성형수술을 받는 데 규칙이 있다. (p.127, 결혼에 정해진 기본원칙은 없다)
우리는 날이 갈수록 결혼이라는 제도에 빠져드는데 반해(보석, 결혼반지, 웨딩 플래너…… 그 거창한 절차를 생각해보라) 프랑스 여자들은 날이 갈수록 결혼이라는 사회적 관행을 철저하게 따지고 든다. […] 우리는 전통적인 부부상을 축하할 일이자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홍보하는 데 반해 프랑스 여자들은 대부분 결혼이라는 풍습을 칙칙하고 촌스러운 부르주아 문화로 간주한다.
솔직히 나는 알고 지내는 수많은 프랑스 커플들 중에 누가 정식 부부이고 누가 아닌지 모른다. 프랑스 사람들 관점에서는 그걸 나누는 자체가 부적절한 일이다. (p.159~160,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미국에서는 결혼식과 결혼에 끔찍하게 집착한다. 일생일대의 결정적인 순간에 막대한 거금과 에너지를 투자하고,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되도록 유지하는 데 또 막대한 거금을 투자한다. 물론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p.161,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먼저 프랑스 여자들은 자기 개조를 위해 헉헉대며 러닝머신을 뛰는 것이 절대 재미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현재의 당신은 단단히 문제가 있다는 사악한 암시를 풍기며, 부단한 자기 개조를 통해 더 나은 인간으로 전혀 새롭게 탄생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미국식 문화를 미심쩍게 생각한다. 그들은 식도락을 저해할 뿐 아니라 청교도적인 극기가 엉뚱하게 발전한 듯한 기미까지 풍기는 재미없는 실용주의가 얼마나 고역인지 피부로 직감한다. 그러니 프랑스 여자들이 매일 아침마다 헬스클럽에서 땀을 빼고, 자리에서 근력운동을 하고, 에너지 공급원이 될 만한 식사를 하고, 저녁을 먹기 전에 케겔 운동을 하는 데 집착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p.219, 세월을 거부하는 것보다 유치한 것은 없다)
온갖 형태로 표현되는(우리 집, 우리 아이들, 우리 남편, 내가 어떻게 보일까 하는) 겉모습에 대한 불안감이 열정을 자유롭게 발산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제2의 성”에서 이 부분에 대해 아주 흥미로운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가사노동보다 더 시시포스의 고문에 가까운 일은 거의 없다. (……) 먼지와 쓰레기를 상대로 벌이는 전쟁에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빨래, 다림질, 빗질, 옷장 밑에 쌓인 보푸라기 쓸어내기 – 부패를 막으려는 이 모든 시도는 생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다.”
생에 대한 부정이라니, 시몬 드 보부아르가 지겨운 집안일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나는 거실이 엉망이라든지, 이불을 개지 않았다든지, 집안이 난장판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집안 상태에 대해 미안해하는 프랑스 여자를 거의 본 적이 없다. 프랑스 여자들은 대부분 미적 감각에 집착하지만, 미적 감각이 물씬 풍기는 청소(혹은 완벽한 커플 완벽한 가족)를 경계하는가 하면 이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질서도 경계한다. (p. 274~275, ‘올바른 방식’ 따위는 없다)
이 책에는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그리스, 영국, 일본, 중국, 아일랜드, 미국 등 각 나라의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무인도에 표류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쓴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하게 잘 사는 건 프랑스 사람들 뿐이다. 말하자면, ‘네가 지금 행복하기만 하다면, 남들 얘기 들을 거 없고, 규칙 따위 지킬 필요도 없다. 그리고 또 행복하지 않으면 어때?’라는 인생 철학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
책 속 구절:
[…] 아주 프랑스다운 분위기(예쁘고 똑똑하며, 화장기가 거의 없고, 사람을 계속 긴장하게 만드는 무심한 권위자의 분위기)를 자랑하는 피투시는 페미니즘과 결혼 등 이 책 곳곳을 장식하는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내가 프랑스 여자들의 가장 결정적인 특징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그 작은 체구를 거의 집어삼킬 듯한 가죽 소파에 몸을 묻고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저 멀리서 사이렌이 삐오삐오 울리는 가운데, “시간은 짧고 쾌락은 즉각적임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브라보. 피투시는 프랑스다운 모든 것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낭만주의와 현실주의의 혼합을 이 한마디로 요약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순간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순간을 포착할 줄 아는 능력이다. 또 다르게 표현하면 섹시한 실존주의다. 또 다르게 표현하면 변덕스럽고 불완전한 실생활에 대한 현실적인 자각이다. 프랑스 여자들은 스스로 불멸의 존재가 아님을 알고 있다. 그들은 죽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니 코냑을 홀짝홀짝 마시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프랑스 영화가 많을 수밖에 없다. 양쪽 다 얼마 전에 이혼한 남자(장-루이스)와 여자(안)가 등장하는 클로드 를로슈의 고전작 ‘남과 여’를 생각해보자. 이 영화에서 안과 장-루이스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만난다. 그때 기차를 놓친 안이 장-루이스의 차를 얻어 타게 되는데, 첫눈에 둘이 서로 호감을 느낀다. 죽음이라는 존재가 순간을 신성하게 만든다. 언젠가는 죽을 운명임을 알기에 두 사람의 열정은 더욱 활활 타오르고, 언젠가는 죽을 운명임을 알기에 더 많은 여행을 떠나고 끝없이 갈망한다. 죽음을 생각하면 인생의 모험을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 정서적인 모험을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일종의 죽음과 같다는 것이 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다. (p.130~131, 안전한 ‘사랑’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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