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도시에 남겨졌을까
김지수 지음 | 홍시커뮤니케이션
저자인 김지수는 ‘이 도시에 산다는 것은 제 각자의 불완전한 소명을 이끌고 불모의 거리를 헤매고 다니며 불안한 인간들과 관계한다는 것’(p.4)이지만, 그 ‘부유의 슬픔 속에서도 뿌리 내리려는 안간힘’을 ‘희망’이라 생각하면서 이 글을 썼다. 보그 한국판 피처 디렉터(즉, 해외 라이선스 잡지의 에디터)인 그녀는, 도시적이라 할 것 같으면 누구 못지 않게 도시적인 사람일 것이다. 어느날 운동화를 신고 걸어다녀봐야 겠다는 생각에 ‘압구정이나 신사역에서 회사가 있는 논현동까지, 그리고 청담동과 강남역 일대를 신나게 걸어다’(p.144)니고, 그러다 보면 ‘신호대기에 걸려 있던 차에서 정신과 의사 친구가 경적을 눌러 인사를 하고, 갤러리에서 작품을 걸고 있던 사진작가와 우연히 만나’(p.145)기도 하며, 스타일리스트 친구가 “턱시도 재킷에 트레이닝 팬츠, 빅 선글라스, 나이키 배낭, 생수병…… 저렇게 입고 청담동을 초스피드로 누비는 저 여자가 누구지? 하고 봤더니, 너였어. 반갑다.”(p.145)고 말하기도 하는, 그런 강남족. 하지만 그녀는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봉천동 산동네의 우물가를 떠올리며 그 곳이 ‘내 유년의 영혼이 깃든 곳’이라 말하고, ‘결국,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밥 먹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도시인이다. 그녀가 만난 사람들, 도시에 살며 부닥치는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에세이.
책 속 구절:
문득 기러기 아빠인 뮤지션 김태원이 생각난다. 가장 미치겠을 때는 혼자서 햇반과 햄을 먹고 있는데, 오피스텔 복도에 구수한 밥과 된장찌개 냄새가 스밀 때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모여 함께 밥먹는 것이 ‘음식 정의’의 시작이다.
내 주변의 돌아온 싱글들은 이혼의 결정적인 이유를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데서 찾곤 한다. “그를 위해서 부엌에서 정성스러운 음식을 준비한 기억이 없어. 아침에 일어나면 남편이 먹다 버린 컵라면과 치킨, 탄산음료가 식탁에 널브러져 있었어. 집 안에 무기력과 결핍감만 가득했지. 우리는 서로의 몸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아.”
우리의 뇌는 음식을 씹을 때 스트레스를 줄이고 마음의 평안을 찾아주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고, 이 호르몬은 음식을 먹을 때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무언가를 먹는 모습을 볼 때도 분비된다고 한다. (p.43, 결국,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밥 먹는 일이다)
나는 성인이 되어 아버지의 결혼식에 참석했지만, 어릴 적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뼈는 한강에 뿌려졌다고 했다. 나는 그 장면의 구체성을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 죽음 뒤의 삶을 상상할 수 없듯 그토록 오래도록 반복해본 습관이건만 예식을 치른 뒤에, 어떤 나날이 펼쳐질지 알지 못한다.
“내가 처음으로 혼자서 꽃도 맞추고, 병원도 정하고, 납골당도 보고 다 했거든. 그러다가 ‘여보, 나 잘했지? 칭찬해줘야 하잖아!’ 하고 보면 아무도 없는 거야.”
30년을 남편만 의지하다 갑작스레 상을 당했던 한 어른은 장례식에 찾아간 내 손을 잡으며 아이처럼 칭얼댔다. (p.111~112, 오늘도 우리는 결혼식의 하객, 장례식의 조객으로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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