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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by mariannne 2011. 8. 28.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박원순 지음 | 한겨레출판)


19세기 말 프랑스, 한 유대인 대위가 군사 기밀을 몰래 독일로 빼 낸 혐의로 비공개 군법회의에서 종신유형을 선고 받는다. 일명 ‘드레퓌스 사건L'affaire Dreyfus’으로,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의 많은 지식인들이 양심선언을 하며 사건의 주인공인 드레퓌스 대위를 지지하게 된다.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고, 클레망소, 아나톨 프랑스를 비롯하여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그의 편이 되었다. 1894년 12월에 종신형을 선고 받은 후 수년 간 유배생활을 해야 했고,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진 드레퓌스는 1906년 7월, 무죄 선고를 받아낸다. 사실 아무 죄가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진보 지식인으로 알려진 박원순 변호사가 엮은 ‘세기의 재판이야기’로, 드레퓌스 사건을 비롯하여 철학과 신념 때문에 독약을 거부하지 않았던 소크라테스, 반역죄로 재판 받은 예수 그리스도, 1431년 ‘주술’과 ‘이단’혐의로 화형을 당한 잔다르크(1456년 ‘무효’ 선언을 받는다), 왕의 결혼을 반대하며 그 권위를 ‘악의적으로’ 침해했기 때문에 1535년 유죄판결을 받은 토머스 모어(로마카톨릭교회는 400년이 흐른 1935년에 그를 순교자로 선언), 중세시대 마녀재판으로 사형 당한 100만 여성들,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한 갈릴레오 갈릴레이(약 350년이 지난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당시 교회의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갈릴레이의 죄는 사면된다), ‘괴뢰 정권’이라는 악명을 가진 프랑스 비시정권의 수장 필리페 페탱, 스파이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 로젠버그 부부,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라는 소설로 ‘외설물’ 논란에 휩싸인 D.H 로렌스 등을 통해 ‘법정 드라마’가 얼마나 많은 억울한 죽음과 오명을 양산했는지를 말하고 있다. 

제목인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라는 말은 소크라테스가 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토머스 모어가 사형집행관에게 한 말이다. 그는 ‘수염은 반역죄를 저지른 적이 없으니’ 수염이 잘려지지 않게 해달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책 속 구절:
윈스턴 처칠이 지적한 대로 ‘우리의 위대한 민주적 제도는 사람들의 죽음에 기초’하고 있다. 케네디 대통령도 암살당하기 직전 한 연설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힘센 것은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니다. 수소폭탄도 유도미사일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자유롭고 독립적이고자 하는 영원한 욕망이다”라고 말했다. 토머스 모어 역시 그와 같은 인류의 욕망에 따라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었다. 국가의 권력은 모어를 시련에 들게 하였으나 모어는 죽음으로 대답하였다. 자신의 목을 걸고 ‘최악’의 길을 막으려 애썼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날 자신의 양심을 지킨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p.140~141, 수염은 반역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

[…] 자신이 발행하는 포르노잡지 “허슬러’를 지키기 위해 보수주의자들의 총탄세례가지 받으면서 당당하게 표현의 자유를 요구한 래리 플린트는 이렇게 항변하였다.
“제 잡지가 비도덕적이라구요? 그러면 전쟁은 어떻습니까? 원자폭탄은 어떻습니까? 합법적 살인과 포르노 중에 어느 것이 더 비도덕적입니까?”(p.348~349, 외설인가 명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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