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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by mariannne 2009. 1. 25.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문학사상사)


하루키는 소설 뿐 아니라 여행기, 에세이 등 다양한 종류의 글을 수시로 써 내기 때문에(게다가 거의 모든 작품이 국내에 번역되니) 그의 팬으로서는 다행스럽기 그지 없다. 최근에 쓴 책이 "어둠의 저편"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그 이후 국내 출간된 몇 갠가의 수필이나 대담집을 읽으며 신작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번에 나온 이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두 말 할 것 없이 그의 마라톤 인생에 관해 쓴 것이고, 제목은 그가 좋아하는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응용한 것이다.

지금까지 스물 다섯 차례 풀코스를 완주하고, 100킬로 울트라 마라톤과 트라이애슬론(수영, 사이클, 마라톤 등 세 종류의 운동을 동시에 해 내는 경기)에 참가한 그는 묘비에 "작가(그리고 러너),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는 문구를 넣고 싶어하는 러너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왜 그렇게 달리는가"라고 묻는다면 대략 '소설을 꾸준히 쓰기 위한 체력 단련' 정도의 대답이 올 것이고, 실제로 "달리고 있을 때 어떤 일을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는 "확실히 추운 날에는 어느 정도 추위에 대해 생각한다. 더운 날에는 어느 정도 더위에 대해 생각한다. 슬플 때에는 어느 정도 슬픔에 대해 생각한다. 즐거울 때는 어느 정도 즐거움에 대해 생각한다. [...] 그렇지만 실제로 제대로 된 것은 거의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p.36)라고 썼다. 책 속에는 '원칙적으로는 공백 속을 달리고 있'으며 '거꾸로 말해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서 달리고 있다'(p.36)는, 소설가다운 멋진 문장도 있다.

하와이 카우아이 섬에서, 도쿄에서, 매사추세츠 주에서, 한여름의 아테네에서 달리는 그를 상상하자면 가만히 앉아있기가 불편하기도 하고, 언제 어디에 있든 한 달에 300킬로미터를 꾸준히 달린다는 내용은 일주일에 두 세 번 런닝머신 위를 겨우 겨우 달리는 도시인들을 머쓱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그나마라도 그만큼 달린다는 것'이 무의미하지 않고  좀 더 나은 인간으로 살고 있다는 위안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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