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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시칠리아의 암소

by mariannne 2008. 2. 18.

시칠리아의 암소 - ...한줌의 부도덕
(진중권 지음 ㅣ 다우출판사)

한 지식인이 본 '이해할 수 없는 사회'

진중권은 예나 지금이나 거칠다. '인간에게는 편견을 가질 자유까지도 있'지만 '그 편견을 남에게 해를 끼치는 방향으로 표명하는 것은 시민사회에선 용납할 수 없는 범죄'(p.206)라는 믿음으로 '해'를 끼치는 사람들을 맹렬히 공격하는 건 7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그 뿐 아니다. '멘탈리티의 극단성'을 보이는 강철 김영환이나 '극우' 조갑제, '몰상식한 발언'을 하는 '존경받는 소설가' 이문열이나 그를 대변하려는 박경범, '국가주의자' 이인화, '영어공용화'를 외치는 복거일은 물론이고, '모래시계 세대'의 상징자본을 몽땅 챙겨가려는 운동권 출신의 정치인까지도 그의 표적이다. 조선일보에 대해서는 아예 여러 장(章)에 걸쳐 다각도로 비난을 퍼붓는다. 보수 언론이나 '극단주의'로 치닫는 어떤 개인 뿐 아니라, '천박하고' '무지한' 이 사회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독설을 내뱉는다. '정신적 성숙이 안 된 사회'(p.97)라든지 '우리 사회에서 권력을 바라보는 시각이 낡았기 때문'(p.141)이라는 이유다. 그에게는 이 사회의 구석구석이 도무지 마음에 안 들고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그의 눈에 비친 이 사회는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다.

5년을 친구로 지냈다는 순진한 터키 촌놈 라마산에 대해 쓴 "라마산으로부터 온 편지"나  별자리에 대한 추억 끝에 "시민들이여, [...] 세속의 어둠을 배경으로 외로이 빛나다가 때로는 다른 별들과 합쳐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는 별자리가 되자"(p.64)라고 마무리하는 "별자리 진보"라는 글 처럼 '착한 글'도 있지만, 왠지 진중권이 쓴 것 답지 않게 시시하다. 진중권의 글에 대한 기대는 따로 있는 것일까. 그는 '집단적' 혹은 '극단적'인 것에 대해 경고하는데, 내가 볼 때는 진중권이야 말로 극단적인 사람이며, 그로 인해 '집단'을 몰고다닐 사람이다. 그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간에.

이 책이 출판된 게 2000년 가을이니, 시대를 감안하고 사건을 되돌아보며 읽어야 하기 때문에 더 부지런해져 한다. '박남철 사건'은 무엇이며, '이번에 롯데 호텔 노조에서 폭로한 내용'은, 또 '얼마 전 부산일보에 기고한 시인 노혜경의 시론'은 무엇인지... 고작 7년 전의 일인데도 이러니, 이런 트렌디한 책은 도대체 언제, 무슨 사건 때문에 이리 광분해야 하는지를 살짝 밝혀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책 속 구절 :
운동권이 그 모든 부정성에도 불구하고 건강성을 유지해오고, 또 욕을 먹어가면서도 상징자본으로 쓰일 정도의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대의를 지키려는 이런 조그만 노력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지도하던 그 사람들은 정작 자기 한 몸을 위해 대의를 희생시키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 기현상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지금 그들을 도덕적으로 성토하고 있는 게 아니다. 과연 내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나는 어떻게 이런 일이 논리적으로 가능한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이번 기회에 나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참으로 무한한 행위의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큰 인간학적 수수께끼는 '때는 지금이다' 하고 이들에게 돌을 던지는 수구언론들이다. 20년 전 5월에 자기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벌써 잊었다. (p.35)

영어공용화? 나는 쓸데없는 민족주의적 감상으로 복거일이 이런 발언을 할 자유를 집단적으로 깔아뭉개는 만행에는 반대한다. 그럼 안 된다. 나는 이런 발언까지를 할 복거일의 자유는 열렬히 옹호하고, 그의 용기는 열렬히 칭찬한다. 하지만 이 발언의 몰상식함에는 경악을 하고, 그게 농담이 아니라 진지한 담론의 행세를 하는 우리 지성계의 수준에는 통탄을 한다. (p.110)

나를 더 실망시키는 것은 좌파 지식인들의 태도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사전에서 '좌파'란 극우파와의 싸움에서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싸우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리버럴리스트와 달리 좌파는 개인의 선택의 자유와 함께 선택의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보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거기에다 좌파의 정치적 입장에는 사회적 연대라는 실천적 원리가 부과된다. 개인의 자유를 논하는 데에 그치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 책임과 연대를 말하는 것. 굳이 공동체주의/자유주의 논쟁을 인용할 필요없이, 그것이 내가 아는 '좌파'의 정치적 입장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 사회에선 이것이 뒤집혀져 있다는 것이다. 리버럴리스트들이 극우와 열심히 싸우는데, 좌파들이 그 옆에서 조선일보에 기고할 개인의 자유를 논하는 자유주의적 눈증을 펴고 있다. (p.157~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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