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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박노자의 만감일기

by mariannne 2008. 2. 9.

박노자의 만감일기 - 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   
(박노자 저 | 인물과사상사)


박노자는 어떤 사람인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 부르크에서 태어나,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로 살다가 2001년 한국에 귀화하여 '박노자'라는 이름을 갖게 됐고, 현재는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중인 젊은이다. 콧수염이 인상적이라 나이가 들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30대 중반의 젊은이.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사실, 이미 '한국인'이다)으로 유명하며 '자본주의라는 세계체제 자체가 언젠가 그 모순의 무게로 파탄을 맞으리라 생각'(p.113)하는 사회주의자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등의 저서로 잘 알려졌고, 이번에는 블로그를 통해 올린 '일상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 냈는데,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개인적인' 글이라기 보다는 '타자'들과 '고민'하며 '번뇌 속의 물음들이 독자 개인에게 개인적, 사회적 화두를 던져주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쓴 글들이다.

그는 한국인이지만, '귀화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가 '대한민국'에 대해 쓴 글들에서 '우리'라고 표현한 내용이 아직 어색하게 느껴진다. 대한민국의 치부를 지적할 때는 '외국인'이라는 생각이 앞서기도 한다(하지만 J. 스콧 버거슨과는 달리 훨씬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주의깊게 읽게 된다). 특히나 한국에 몇 년 있다가 '노르웨이'라는 북유럽 국가로 가 버렸으니, 대한민국에서만 통용되는 모습들이 그에게 얼마나 이상하게 보이겠는가. 게다가 어쨌든 그는 '옳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으니 이 나라가 얼마나 모순 투성이겠는가. 그는 '비교적 잘 사는 나라인데도 불만과 불안으로 가득 찬 대한민국'의 모순된 모습을 지적하며, 이 불만, 불안을 '민주노동당'에서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현재 민노당은 비정규직 외주화와 용역화를 제대로 막지 못하고 있'으며, '이 조직의 규모와 투쟁방법만으로 대한민국인 다수의 원한을 담아내기엔 틀린 것 같다'(p.75) 고백하고 있지만. 그렇다면 그에게 있어 '희망'은 무엇일까. 그는 '체제'를 바꿀 '밑으로부터의 내파'(p.115)를 기대하고 있다. 여기서 그에 대한 호오好惡가 갈린다. '부자들에게 제대로 된 세금(즉 한 달 종합소득이 900만~1,000만 원을 넘을 경우 적어도 그 소득의 절반 이상이 되는 세금 말이다)을 물어 서민 복지망을 만들 정부'가 들어서야 '지금처럼 지치고 피곤하고 늘 짜증이 나는 비인간적인 생활 패턴이 적어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할 듯하다'(p.153)고 기대하는 사람인 것이다. 또한, 1인당 국민 총소득이 더 많은 나라에 대한 '기대'나 그 총소득에 비례해 '행복지수'가 높아질 거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보다 '내가 사회에 의해서 보호를 받고 있으며 어떤 불운이 닥치더라도 사회가 나를 포기하지 않을 것'(p.167)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이유로 노르웨이가 대한민국보다 더 '안락한 사회'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일찌감치 그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다면 물론 이 책(또는 그의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이미 읽었겠지만, 혹시 반감을 갖고 있더라도 박노자의 시선에 대한 관심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가 의도했던 것처럼 '번뇌 속에서 깨달음'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니까.

책 속 구절 :
.. 나이과 직급이 다르고 비공식적 영향력 등이 다를 수 있는 사람들이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만날 때에는 분명한 경계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려고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남을 짓밟는 일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철저한 개인화와 '개인존중'을 우선시 하는 분위기가 사회를 흥건히 적셔야지만 현실적인 권력·권위 관게를 넘어 어느 정도의 '평등'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다. 한 지인이 "당신이 사회주의자라면 왜 개인주의를 찬양하느냐"고 내게 물은 적이 있는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개인주의가 몸에 밴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나이가 많다고 해서 나이 적은 이에게 "야, 이제 노래 한번 해봐, 노래하라니까!"라고 말할 수 없다. "야, 노래해봐!"라고 말할 수 있는 곳에서는 평등이고, 제대로 된 사회주의도 불가능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이 문제를 높고 "문화 차이란 게 있는데 상대화시켜서 봐야지"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랫사람'이 강제로 노래할 때 느끼는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면 '문화 차이'로만 보고 넘기긴 어렵다. 문화가 원래 그렇다면 당하는  사람이 고통을 받지 않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사회적 힘의 불균형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결여된 상황, 미시적인 권위주의가 거시적인 권위주의를 뒷받침하는 상황에서는 언제고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p.61)

전교조는 급진적인 조직이 아니지만 전교조 교사에게 수업을 받은 일이 있었던 아이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의 의식 없이 순응적인 '평범한 생활'을 거부할 위험이 있다. 이것이 '전교조 마녀사냥'의 진정한 이유가 아닐까? 전교조 교사의 상당수는 수업할 때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키우도록 노력을 하는데, 그것이야말로 준파쇼적 재벌 자본주의로서는 치명적인 위험이다. 일단 전교조 교사로부터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운 뒤에는 '신성한' 군대에 대해서도, 비정규직에게 100만 원 이하의 월급을 주는 '초일류 기업'들에 대해서도, 한미 FTA를 두고 "한국인의 손이 신의 손이니까 다 잘 될 거야" 같은 수준의 이야기를 하는 노모 씨에 대해서도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이 체제로서는 소화할 수 없는 분자다. 그렇기에 이 위험을 지금 '전교조 죽이기'를 통해 원천 봉쇄하려 하는 모양이다. (p.143~144)

결국 진정한 민중 세력들이 유권자의 안테나에 잡히지 않는 이상 선택의 폭이란 "중도 보수냐 극우냐"일 뿐이다. 심각한 것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민생에 해악을 끼친 중도 보수보다 과거의 '성장 신화'를 등에 업은 극우파가 훨씬 더 쉽게 선택된다는 사실이다. (p.138)

박노자의 블로그 (박노자 글방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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