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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갈치조림 정치학

by mariannne 2008. 4. 12.

갈치조림 정치학 - '사소한 것들'에 담긴 사소하지 않은 정치이야기
(권혁범 저 | 생각의나무)


일상 속 '못마땅한 상황들'에 대하여

일인분에 수 점 씩 나오는 삼겹살과 달리, '갈치조림 정식'이라는 건 대체 몇 토막의 갈치가 나올 지, 한 사람 앞에 얼마만큼씩 돌아갈 수 있을 지 알 수 없는 메뉴다. 어느날 저자가 참석한 저녁 모임에서 '갈치조림 정식'이 나왔고, 자연스레 맨 안쪽 상석을 차지한 남자 교수 A는 중앙에 놓인 갈치 조림의 큰 토막을 차지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작은 조각 하나도 제대로 못 먹고 갈치 국물이 밴 무를 잘라먹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저자는 이러한 광경을 주시하며 '갈치조림 나눠 먹기는 정치적 실천의 미니어처'로 생각하게 된다. 지하철에서는 시민을 대상으로 '국가안보'를 운운하며, '집단적 훈육주의'의 결과로 공공질서는 쉽게 실종되었고, 타의에 의해 불우이웃돕기와 수재의연금이 갹출되며, 농산물이나 각종 공산품에는 '현재의 화폐경제가 요구하는 비용'만 포함 되어 있을 뿐 '환경비용'은 지불 유예 중인 사회. 이 책은 그 일상속 '못마땅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다.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인 권혁범은 '일상적 파시즘'에서 자유롭고 싶어하는 한 인간이다. 대한민국은 '집단주의'의 강요 때문에 오히려 '이기주의'에 빠져들었고, 이제는 '개인주의'와 '자율성'을 강조할 때이며 '이탈'과 '불순'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다름'을 받아들이고, '다양하고 다중적인 살아있는 인간 간의 자유롭고 수평적인 관계망을 만들어 나'(p.88)가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 '성 평등'과 '놀 권리'를 찾는 진보적 지식인인 그의 주장은 사실 다 좋은 얘기고 옳은 얘기다. 왜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지 못하는 것일까. 그는 스스로를 '삐딱하다'고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삐딱함'에 동조를 할 것 같다.  

 
책 속 구절 : 
[...] 사람들은 공공질서의 부재 혹은 공중도덕의 부재를 누구나 개탄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습관적으로 공동체의 붕괴와 이기주의의 창궐에서 찾는다. 그 뒤에는 서구에서 '무분별하게' 들어온 지나친 개인주의 문화가 도사리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정반대로 생각한다. 공공질서의 부재는 오히려 우리 사회의 집단적인 훈육의 결과라고 본다. 입만 열면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 애국조회를 그렇게 수도 없이 서고 군대 갔다 온 사람이 그렇게 많은 우리 사회에서 공공질서는 왜 그렇게 쉽게 실종되는지 이상하지 않은가? [...] (p.28)

단체생활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거기서 남는 것은 무엇일까? 공동체의 이익과 평화는 아니다. 집단주의적 주류 규범 그리고 거기서 기득권을 누리는 획일주의 세력의 승리다. 사회성 부족한 사람은 오히려 내면이 강하고 개성적이며 집단의 획일적 가치나 분위기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 주체적 인간일 수 있다.
술집 혹은 엠티 혹은 체육대회 혹은 단합대회의 '단체생활' 강조하지 말고 홀로 자기 방에서 벽 보고 술 마시는 사람, 혼자 산에 가려는 사람, 그 시간에 조용히 음악 들으려는 사람, 사람 많은 데 가면 탈진하는 사람, 모두 그냥 다 놔둘 수 없을까?
공동체와 우정과 친목과 단결의 명목으로 강조되는 사회성, 이제 선택 사항이 될 수는 없을까? 쉬는 시간에 각자 자기 고유의 개성적인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놀게 놔두면 가정이 무너지나, 학교가 붕괴하나, 회사가 부도나나? (p.84~85)

공무원사회는 그렇다고 치자. 대학에서 월급 받는 학자로서 참 곤혹스러운 때는 승진이나 재임용과 관련하여 임명장을 받는 행사 때다. 넥타이 매고 줄 맞춰 서 있다가 이름이 불리면 나가서 경례하고 임명장 받고 악수하고 뒤로 물러선다. 심지어 집단적인 '차려! 경례!' 구령에 맞추어 인사하고 나면 학자로서의 자존심과 독립적 정체성은 허깨비였다는 생각이 든다. 지식인은 자존심과 독립성을 갖고 먹고사는 존재인데 그것에 정면으로 타격을 가하는 셈이다. 아, 나라는 인간은 결국 사립하교 '주인'에게 내 교육적 생명이 잡혀 있는 존재이구나! 이런 암시를 노골적으로 확인해주는 의식 아닌가? (사실 의례의 목적은 바로 그런 쌍방 간 확인 절차인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현실의 권력관계를 확실하게 일깨워주는 의식이다.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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