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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장미 도둑

by mariannne 2002. 5. 14.

장미 도둑
(아사다 지로 저 | 문학동네)

가끔은 소설을 읽으며 마음 한 구석에 아직도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고마워하게 된다. 몇 년 전 학교 도서관에서 아사다 지로의 책을 읽으며 눈물 몇 방울을 뚝뚝 흘렸던 기억이 있다. 모두들 전공 서적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며 학업에 전념하고 있는 대낮에, 소설을 읽으며, 게다가 눈물 방울까지 떨어뜨리는 민망함이란... 정확히 어떤 작품인지 기억할 수 없지만, 그 때 나는 <철도원>이나 <은빛비>를 읽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아사다 지로의 작품에 집착하게 됐지만, 감동을 쫓다보니, 늘 자극적인 '최루의 작품'을 기대했던 것 같다.

<장미 도둑>은 기대했던 작품과는 좀 다르다. 하지만 6편의 단편을 통해 그만 풀어낼 수 있는 '요란스런 수다 속의 담담함'을 한껏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전체적으로 '노년'과 '죽음'에 관한 얘기가 지배적이라, 마치 인생을 다 산 것 같은 기분이다. 밑에서 누군가 얘기했지만, 신기하게도 작가는 다양한 부류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중년의 남자였다가, 초등학생, 노인, 여자가 되어 이야기를 펼친다.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다. 가장 흥미로운 작품은 "나락"이다. 승강기 사고로 목숨을 잃은 한 남자의 장례식. 그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이지만 곧 땅속으로 묻힐 것이다. 한 남자의 죽음과 함께 드러난 얘기지만, 한 남자의 죽음과 함께 사라질 이야기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비밀들이 존재할까.

책 속 구절 :
"악착같이 돈을 벌겠다고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하고, 나는 악귀다, 이건 전쟁이나 다름없어, 죽기 아니면 살기다. 그렇게 혼자 다짐하면서 살아왔더라도, 그리고 집사람은 먼저 떠나보내고 아이들에게는 배반당하고 부하들은 나를 야차보듯 무서워하고...... 그건 모두 돈 돈 돈 돈, 돈만이 실제로 손안에 쥐어지는 행복이라고 믿으며 살아온 결과였어. 그렇지만, 그렇게 악착같이 벌어들인 돈을 통째로 다 내주어서라도 마지막 순간에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돈에 미쳤던 것도 그리 허망한 일은 아니잖은가......" 목이 메이면서 영업사원이 남겼던 말이 되살아났다. 인간의 오감이 전부 완전한 행복감을 맛보면서 나른한 봄날의 햇살을 받듯이 천천히 생을 마감합니다. 중국의 황제에게만 허락됐던,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죽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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