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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나의 프로방스

by mariannne 2004. 12. 26.

나의 프로방스
(피터 메일 저 | 효형출판)

엑상프로방스, 아비뇽, 마르세이유, 칸, 니스…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이름들. 프로방스는 이런 곳을 포함한 광범위한 지역을 말한다. 지중해의 강렬한 태양, 멋진 바다, 깨끗한 공기, 맛있는 음식, 시골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 그리고 느긋한 인생, 스트레스 없는 하루하루를 찾아 떠난 영국인 피터 메일, 그는 과연 행복할까?

“나의 프로방스”는 한 두 달 휴가차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예 작정하고 프로방스에 머물기 시작한 도시인의 1년을 담은 책이다. 일단 일상이 되어 버린 프로방스는 꿈과 낭만의 시골이 아니다. “부바르와 페퀴세”가 접한 어수선함을 상상하면 될까. 한 겨울의 칼바람, 금새 너무나 강렬해지는 태양, 한없이 느긋하기만 한 인부들과의 씨름, 때만 되면 놀러오겠다고 전화하는 ‘잘 모르는’ 도시 사람들 때문에 일도 많고 탈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멋진 곳. 왜? 너무나 맛있는 음식이 있고, 시간은 넉넉하다 못해 흘러 넘칠 지경이며(마음을 조급하게 먹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 삶이기 때문이다. 세 종류의 피자로 시작하여 토끼와 멧돼지, 개똥지빠귀로 만든 파테, 마르로 맛을 낸 두툼한 돼지고기 테린, 통후추를 흩뿌린 큰 소시지, 통째로 요리한 오리 가슴살과 다릿살을 둘러싼 야생 버섯, 토끼고기 스튜, 야채 샐러드, 염소젖 치즈, 아몬드와 크림 과자를 한 끼 식사로 먹을 수 있는 프랑스 사람들 덕분에 이렇게 맛있는 책을 볼 수 있게 되는군… 요리, 사람 이름, 지명 등 낯선 단어 투성이라 미끈하게 읽히진 않지만, 소재 자체가 매력적이라 휴식처럼 읽을 수 있다. 참, 이 책의 분위기를 절대적으로 좌지우지하는 삽화는 몹시 이국적이라 생각했는데, 우리나라 사람의 그림이란다.

책 속 구절 :
프로방스는 북유럽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상당한 충격이다. 프로방스에서는 모든 것이 순수 그 자체다. 기온은 영상 37, 39도에서 영하 7도까지 극과 극을 달린다. 비가 내리기 싲가하면 도로가 유실되고 고속도로가 폐쇄될 정도로 엄청나게 쏟아붓는다. 미스트랄은 심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무지막지하게 바람으로 겨울에는 모진 추위를, 여름에는 잔인할 정도로 건조한 공기를 몰고 온다. 음식은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강한 맛으로, 부드러운 음식에 익숙한 소화기관을 뒤집어놓기 일쑤다. 포도주는 숙성되지 않아 쉽게 마셔지지만, 조심스레 오랫동안 숙성시킨 포도주에 비해 알코올 함량이 높은 경우가 적지 않다. 영국과 사뭇 다른 기후와 음식이 복합된 결과에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중략)

양말을 마지막으로 신은 게 언제였더라? 까마득한 기억이었다. 내 시계는 서랍에서 잠자고 있었지만 나는 마당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위치로 시간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며칠인지는 잊은 지 오래였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욕심 없는 식물로 변해가고 있었다. (p.198~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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