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비소설

밥벌이의 지겨움

by mariannne 2004. 12. 26.


밥벌이의 지겨움
(김훈 저 | 생각의나무)

그래도 밥벌이는 해야 하니 말이다…

“밥벌이의 지겨움” - 이 얼마나 멋진 제목인가. 월급 받고 일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다들 가슴 한 구석에 사직서를 찔러 넣고 산다. 메신저 대화명으로, 또는 블로그 제목으로 ‘사는 게 극기훈련’이라거나 ‘인생은 버티기 한 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는 문구를 적어 놓고 내심 극적인 변화 따위를 꿈꾸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월급쟁이 생활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독립된 인간이 되려고 하는 것, 바로 ‘밥벌이’라도 하려는 것이다. 김 훈이라서, 그리고 멋진 제목이라서, 또한 생소한 판형(어른 손바닥만하다)이라서 이 책을 집어 들 수 밖에 없었다.

책 소개를 보니, ‘오랜 언론인 생활에서 얻은 직관과 명석한 판단력, 그리고 흔들림 없는 지성의 사유는 김 훈 시론의 본령을 차지한다. 그의 산문은 단호하면서도 은유적이고, 시적이면서도 논리적이며, 비약적이면서도 검박하’단다. 맞는 말이고, 멋진 설명이다. 세상의 온갖 더러움, 부조리함에 대해 조곤 조곤 자신의 의견을 써내려 간 50대 남자. 그는 밉지도 예쁘지도 않다. 너무나 당연한 생각, 올바른 생각이고,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다. 20대 얼치기도 아니고, 잘난 맛에 사는 중년도 아니다. 김 훈이라서 더 바르게 보인다. 탱크톱 끈과 브래지어 끈을 립스틱과 틴트에 비교하면서, 싱싱한 젊음이여 노출하라, 어차피 가을이 되면 감출 것이니… 라는 말까지 씩씩하게 던지는 그에게 어떤 여성주의자가 ‘버럭’하겠는가. 그를 안다면 말이다.


책 속 구절 :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 (p.35)

'[리뷰]비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성, 그 기분좋고 살아있는 느낌  (0) 2004.12.27
나의 프로방스  (0) 2004.12.26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  (0) 2004.12.09
심리학  (0) 2004.11.28
파리 여자, 서울 여자  (0) 2004.10.3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