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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파리 여자, 서울 여자

by mariannne 2004. 10. 31.

파리 여자, 서울 여자
(심우찬 저 | 시공사)

모든 여자에게는, 아니 모든 사람에게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 좋은 점만 나열하다 보면 그 사람이 아주 멋져 보일 수 있고, 나쁜 점만 따지고 들면 심각하게 골치 아픈 인간으로 보일 수도 있다. 혜안이 없으면 진리를 볼 수 없으니, 들을 귀 있는 자만 들으라 했던가. 뭐 눈엔 뭐만 보인다는 말도 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생각하기에 따라, 마음 먹기에 따라 세상은 180도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란 색안경을 끼고 보면 세상이 온통 파랗다는 얘기.

이토록 멋진 페미니스트가 있을까. 이십 년 이상을 한국에서 살고, 또 이십 년 가까이 파리에서 살고 있는 패션 칼럼니스트 심우찬은 ‘대한민국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여자들’이라 믿고 있으며, 책을 통해 자신이 만난 멋진 여자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단점을 찾고 폄하하기에 더 바쁘다. 또 그렇게 사는 게 마치 자신의 예리한 눈을 뽐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지만 심우찬은 우리가 ‘글쎄, 별로…’라고 하는 연예인에 대해서도 그녀의 장점을 세세히 찾아 늘어놨다. 역시, 멋지다.

1장, 2장에서는 “무엇이 파리를 눈부시게 하는가” “그녀들에게 사로잡히다”라는 주제로 파리의 카트린 드뇌브, 이자벨 아자니, 엠마누엘 베아르, 므슈 안 생 끄렐르, 서울의 심은하, 김희선, 장미희, 강금실 같은 유명인을 소개했고, 3장, 4장에서는 “패션으로 문화를 읽는다” “패션을 향한 열정”이라는 주제로 스타일 아이콘 마돈나, 다이애나 같은 사람들에 대해, 또 그만이 갖고 있는 ‘패션’에 대한 생각, 패션계의 여러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패션이래봤자 기껏 보그나 바자를 대충 넘겨보는 수준에, 유행 스타일이 이거구나… 정도밖에 모르지만, 이 책은 패션을 잘 모르는 나에게도 상당히 재밌게 읽힌다. 게다가 자유분방하고 화려하게 살 것만 같은 이 남자, 사실은 생각이 바르고 정확하기까지 해서 좋다. 그래서 결국은 이 글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책 속 구절 : 
1996년 8월 23일 새벽의 일이었다. 이날 저녁 뉴스에는 이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본 여배우 엠마누엘 베아르가 등장했다. 그녀는 몇몇 문화계 인사들과 더불어 이들 난민을 지지하며 이들에게 물과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그녀는 충격에 휩싸인 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격앙된 어조로 분개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프랑스가 부끄럽습니다.”

물론 그녀의 발언은 우파 인사들에게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심각한 이민 문제를 가중시키는 감상적인 발상이라는 것이었다. 또 일부에서는 이 기회를 이용해 인기를 얻어보려는 쇼맨십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외국인인 나는 바로 엠마누엘 베아르 같은 여성이 ‘프랑스의 힘’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이런 인종적 차별과 탄압이 가해질 때마다 ‘우리는 모두 이민자의 자식들’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뛰어나오는 ‘프랑스인의 양심’, 이것이 문화적으로 전 세계인을 매료시키는 프랑스를 만들어내는 힘이 아닐까. 말리인과 아프리카인들은 결국 누구인가. 모두 옛날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온 사람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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