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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여행책

(book) 여행의 이유

by mariannne 2024. 2. 7.

도서 > 에세이 > 여행 에세이



여행의 이유
김영하 저 | 문학동네 | 2019년 04월 


베스트셀러 작가의 베스트셀러 에세이.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는 후배 말 때문에 읽었는데, 정말 재미있지는 않았다. ​

여행을 좋아하는 김영하 작가의 여행에 관한 아홉개의 이야기가 있다. '여행기'는 아니고, 여행지에 대한 설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행을 하면서 느낀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여행기를 기대하며 책을 집어 든 사람들에게 묘한 지적 허영심을 자극한 인문학 서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  

책 속 구절: 

오래전에 읽은 소설을 다시 펼쳐보면 놀란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게 거의 없다. 소설 속의 어떤 사건은 명확하게 기억이 나는 반면 어떤 사건은 금시초문처럼 느껴진다. 모든 기억은 과거를 편집한다. 뇌는 한 번 경험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잊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어딘가 깊숙한 곳에 처박아두어서 찾을 수 없게 될 뿐. 내 서재가 딱 그렇다. 글을 쓰다가 가끔 어떤 책이 필요해서 찾다가 결국 포기하고 새로 사버릴 때가 있다. 온 집안을 뒤져 그 책을 찾는 것보다 인터넷서점에 주문하는 게 더 빠르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나의 뇌도 비슷할 것이다. 매일 들어오는 엄청난 양의 정보들 중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것만 적당히 편집해서 남기고 나머지는 어딘가에 던져두는 것 같다. 

오래전에 다녀온 여행을 떠올리면 그 어떤 기억도 선명하지 않다. 어렸을 때 읽고 다시는 펼쳐보지 않은 책인 것만 같다. 사진을 보면 기억이 좀더 또렷해지지만 사각 프레임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을 때도 많다. 그래도 가끔 문득문득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여행지에서 마주친 사람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오직 현재", p.71~72)

​생각과 경험의 관계는 산책을 하는 개와 주인의 관계와 비슷하다. 생각을 따라 경험하기도 하고, 경험이 생각을 끌어내기도 한다. 현재의 경험이 미래의 생각으로 정리되고, 그 생각의 결과로 다시 움직이게 된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에 하지 말았어야 할 말부터 떠오르고, 밤이 되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뒤척이게 된다. 후회할 일은 만들지를 말아야 하고, 불안한 미래는 피하는 게 상책이니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미적거리게 된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영감을 좇아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라고, 다시 현재를, 오직 현재를 살아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오직 현재", p.8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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