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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회·정치·역사

우리는 왜 억울한가

by mariannne 2023. 7. 18.

 

사회 정치 > 사회비평/비판 > 한국사회비평

 


우리는 왜 억울한가 - 법률가의 시선으로 본 한국 사회에서의 억울함
유영근 저 | 타커스 | 2016년 09월 19일

 

재미있는 책은 아닌데,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다. 현직 부장판사가 쓴 것이라, 억울한 사연의 판례를 다루었을 줄 알았는데, 사례 보다는 이론 중심이다. 개인적인 사연부터 대한민국 특유의 정서인 한(恨), 원(怨), 화병(火病)에 대한 설명, 억울함과 서러움의 차이 등, 법조인의 관점에서 본 한국인의 '억울함'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집에 두고 언제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 

법조인이 쓴 책은 대개는 재미있다. 몇 권의 에세이를 쓴 것도 부족해 <미스 함무라비>라는 소설까지 쓴 문유석 판사나 <검사 내전>으로 인기몰이 중인 김웅 검사, 추리소설가로 이름을 알린 전직 판사 도진기 변호사, 검사 출신 김두식 교수, 변호사인 금태섭 더민주 의원의 책은 웬만하면 믿고 보는 편이다. 글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라, 글을 풀어내는 솜씨가 좋아 그런가.  

 


책 속 구절: 
그런데 화병을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그 원인이 되는 화는 자기 자신이 무시당하거나 부당하게 남으로부터 피해를 받아 생겨나는 '자신에 대한' 억울한 감정이 일차적인 반면, 서구의 분노(anger)는 자신에게 부당한 피해를 유발한 '가해자에 대한' 원망, 증오의 감정이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p.36) 

실제로 사형을 선고한 경험이 있다. 물론 선고하기 전에 깊이 고심했다. 유사한 기존 사례를 모두 찾아보고 기록도 샅샅이 뒤졌다.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 맞는지 객관적으로 살폈다. 지극히 객관적으로.
그런데 뒤늦게 단지 너무 이성적으로만 따진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사형선고를 앞두고 한번쯤 해봄직한 생각들, 즉 내가 피고인이라면 어떤 심정일까, 과연 국가는 저 사람을 죽일 권한이 있는가, 그가 세상에서 사라지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인가 하는 고민들을 진지하게 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2000년대 초반에 아는 검사로부터 1990년대에 사형집행을 직접 지휘한 경험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하루에 두 사람을 차례로 집행했다고 한다. 첫 번째 사람은 상기된 표정으로 입회 교도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면서 "교도관님, 저 먼저 갑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라고 말했다. 잘못도 뉘우치는 것처럼 보였고 죽는다는 현실도 편히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 검사는 이런 사람을 이제 와서 왜 죽이나 하는 심한 마음의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두 번째 사람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썼다고 주장했다. 처절하게 소리를 지르며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나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이 사형이 서둘러 집행되었다. 판결문을 다시 읽어보아도 유죄의 증거가 너무 명백했다고 한다. 그 후 검사는 한동안 두 사람이 모습이 번갈이 떠오르면서 인위적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자책감으로 괴로워했다고 한다.
당시 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졌고, 집행 장면을 거듭 상상하면서 사형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p.8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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