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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회·정치·역사

4천원 인생

by mariannne 2023. 7. 6.

 

사회 정치 > 사회비평/비판 > 노동문제

4천원 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안수찬, 전종휘, 임인택, 임지선 저 | 한겨레출판 | 2010년 04월 

2018년 여름, 박원순 서울시장이 무더위에 한 달간 옥탑방살이를 한 게 잘 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일 년 내내 거기 사는 사람도 있을텐데. 

2009년 여름, <한겨레21> 기자 네 명이 네 곳의 작업장을 선택해 한 달간 '위장 취업'을 하고, 그 이야기를 주간지에 연재했다. 당시는 큰 화제가 되었나보다. 그들은 경기 안산의 가전제품 공장, 서울의 갈빗집과 인천의 감자탕집, 경기 마석의 가구공장, 서울 강북의 대형마트에서 일했다.  "(...) 수많은 아버지, 어머니와 그 아들, 딸들, 삶에 지친 남루한 육신들과 꿈을 잃은 시퍼런 청춘들이 그야말로 한갓 배경이 되어 매일 반복되는 고통의 하루들을 살아가고 있었"(p.7)고, 주간지 기자들은 한 달간 신분을 감춘 채 그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기사를 보도했다.  그리고 그 기사가 다시 이렇게 책으로 나왔다. 

2009년 최저임금은 4천 원이었다. 이 책 <4천원 인생>에 나오는 사람들은 하루종일 쉴 틈 없이 일한다. 그들에게는 여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실 여유도, 투표소에서 '정의당'에 표를 던질 여유도 없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그래도 여전히, 가난하다.  그렇게 가난한 사람을 뒤로 하고, 기자들은 제자리를 찾아 왔다.  그리고 기자들 덕에 많은 사람들이 '짐작보다 우울한 현실'을 알게되었을 것이다.  

책 띠지에 "울면서 읽었다"라는 문구가 써 있는데, 그럴만한 내용은 아니다. 책 속 노동자들의 삶은 열악하고, 고되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도 있다. 하지만, 남의 일상적 삶을 보며 '울었다'고 하니, 그렇게 일 년 내내 사는 사람은 어째야 하나?  가난의 쳇바퀴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삶을 보며, '나는 이렇게 되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건 괜찮나?(저자 중 한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무슨 생각을 하든, 읽는 사람이 알아서 생각할 일이겠지만. 

지금 시대는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예술을 원하지 않는다. 책이나 영화 속에서 좋은 것, 아름다운 것, 더 나은 삶만 보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이 많이 팔린다면, 그건 다행한 일인 것 같다.    


책 속 구절: 
이 책에는 점심식사 후에 4200원짜리 카푸치노를 마시며 아이폰으로 트위터를 하는 노동자는 나오지 않는다. 수백 명 씩 모여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른 채 일사불란하게 팔뚝질을 하는 노동자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마트에서, 갈빗집에서, 닭공장에서, 주유소에서 하루 종일 일해 100만 원 남짓한 돈을 손에 쥐는 노동자들이 나온다. 그/녀들은 가난하며 늘 어딘가 아프고, 그/녀들의 가족도 가난하며 늘 아프다. 그/녀들은 너무 말랐거나 너무 뚱뚱하며, 10년 동안 휴일 없이 일하다 자궁에 종양이 생겨서야 휴가를 얻는, 그런 노동자다. "군대 있을 때 빼면 투표한 적이 한번도 없다"고 말하는 영호 씨와 "한 달에 200(만원)만 벌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는 영희 씨는 근로계약서를 썼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용역업체 사장을 "인간적으로 믿는다"고 말한다. 그/녀들에게 '노동조합'은 '청와대'만큼이나 현실감이 없는 단어다. (p.14~15, 박권일이 쓴 추천의 글 "이것이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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