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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회·정치·역사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by mariannne 2023. 6. 18.

 

사회 정치 > 사회비평/비판 > 한국사회비평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 주 52시간 근무 시대, 법이 어떻게 바뀌어도 스스로 야근하는 굴레에 대하여
김영선 저 | 한빛비즈

 


내 얘긴가, 싶어서 읽었다. '스스로 야근하는 굴레'에 대한 내용이라니,  내 얘기가 맞을 것 같았다. 심각하게는, 죽을 정도로, 죽고 싶을 정도로 일을 '당하는' '과로사'와 '과로자살'을 다루기도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시간 마름병'이니 '지금도 미화되는 근면 신화'니 '과로 스트레스'니 하는 것들은 내 얘기였다. 

'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오래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일을 오래 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낮은 것일까?' - 이에 대한 저자의 답은 "(1) 정시 퇴근의 권리가 보장되고 (2) 혁신적인 작업 도구가 갖춰져 있고 (3) 업무 프로세스가 합리적이며 (4) 임금수준이 적정하고 안정적이라면 생산성이 낮을 리 만무하다"(p.29)고 했다. 박사님다운 정리다. 

과로가 왜 좋지 않은것인가에 대해 굳이 구구절절 말할 필요는 없다. 일하느라 다른 삶을 포기하는 인생이 누구에게 좋은 것인지도 다 알고 있다. 기업들은 신규 인력 충원대신 기존 인력에 각종 수당을 얹어 더 오래 일을 시키는 방식이 훨씬 '저렴'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쪽을 택한다. 주 52시간 근무가 시행되면, 그게 안될까? 열심히 일해서 성공했다는 '근면 신화'는 기업과 사용자에게 아주 유리한 이야기다. 저자는 '근면 신화가 재현하는 이상적 노동자상은 근면에 대한 강박을 만들고 헌신을 유도'하며, '감내 메커니즘을 통해 착취를 은폐하는 문화 이데올로기'라고 했다. '회사에 충성을 다하고 있다는 인상 관리impression management를 해야 한다'는 문장까지 더하니, 진짜 내 얘기네? 

그렇다면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박사님은 업무, 임금, 제도, 소비, 기술 차원에서 솔루션을 제시한다. '1인분 일의 양'을 분석해 그만큼만 일하게 하고, 여유 시간을 향유할 수 있는 문화 교육을 해야 하며(시간이 남아도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임금구조 개선을 위해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하고, '최저임금' 대신 '생활임금'을 지급하고, 각종 제도를 정비하며, 성과 압박을 줄이라는 것 등이다. 노동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개인은 '두려움을 떨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혹시 눈 밖에 나는 건 아닌지, 뒤처지는 건 아닌지, 튀는 건 아닌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등의 두려움"을 떨쳐야만 '장시간 노동의 폭력성에 맞설 수 있는 자양분'(p.223)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책 속 구절: 


[...] 과로사에 대한 해석이 자기 관리 담론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 현실도 지적해야 한다. 사회적 인식의 부재다. 과로사를 심신이 허약한 사람의 문제로 보거나 '평소 건강 관리를 못했다' '원래 건강이 좋지 않았다'며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례들이 많다. '무리하지 말아야지' '건강 관리 잘 해야지'라는 대처도 마찬가지다. 진단과 대안 모두 '자기관리' 담론 또는 '감내' 프레임에 갇혀 앴다. 과로사를 특정 집단의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보는 예외주의적 시선이나 문제의 원인을 개인화하는 자기관리 담론은 과로사가 착취적 생산관계에 따른 산물이라는 사실을 은폐한다. 이런 시선과 담론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언어가 어느 정도로 작동하고 있는지 말해주는 증거 아닐까? (p.56~57) 

"투견은 투견장에서 지면 최소한 중상으로 실려 나간다. 이기더라도 다음 싸움을 대기해야 한다. 싸움에 미소 짓는 건 투견주일 뿐이다"라는 혹자의 표현은 경제위기 이후 고용 불안이 일상화된 지금 우리의 상태를 압축하고 있다. (p.165) 

그래서 1인분의 일이 어느 정도인지 업무량에 대한 규정과 제한 조치가 병행되어야 한다. 여기서 업무 분석을 둘러싼 노동과 자본의 입장 차이는 극병하게 갈라질 것이다. 업무의 '적정 할당'을 목표로 하는 노동 측과 업무 분석을 통해 '노동 통제, 강도 강화'를 목표로 하는 자본 측의 입장 차이는 같은 명제 아래 조정되어야 한다. 그 명제는 기형적인 장시간 노동 구조하에서는 어떤 희망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시간의 유연화 정도가 높고, 노동시간의 분산이 큰 구조에서는 연간 노동시간의 상한 설정만으로 장시간 노동의 해체라는 본래적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상한선을 월간 주간, 하루 단위로 세분화하고, 상한선 없는 형태의 시간 규제는 너무 많은 사가지대를 양산하게 마련이다.  (p.196~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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