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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신원 미상 여자

by mariannne 2016. 4. 30.


신원 미상 여자  

파트릭 모디아노 (지은이) | 조용희 (옮긴이) | 문학동네 

2003-12-09 | 원제 Des inconnues (1999년)  


"신원 미상 여자"라니...... 다른 제목으로 할 순 없었을까? 프랑스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의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머물게 된 각기 다른 세 여자의 삶을 이야기한다. 

타이피스트로 몇 개월 일하면서 저축한 돈으로 열여덟에 처음으로 프랑스를 떠나 스페인으로 바캉스를 떠난 첫 번째 여자. 고향으로 돌아온 후, 의류회사에서 모델을 구한다는 얘기를 듣고 응시했다 거절당하고 무작정 파리로 간다. 바캉스 때 잠깐 만난 여자의 도움으로 파리의 아파트에 살며 한 남자를 소개받는데, 그 남자의 정체는 모호하기만 하다. 어느날 갑자기 남자가 사라지자 여자는 당황한 마음에 정신을 잃을까봐 두려워진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한다. "손 강이나 센 강에서 건져올리는 여자들에 대해 사람들은 종종 이름을 알 수 없다거나 신원을 알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도 영원히 그 상태로 남기를 바란다."(p.53) 

두 번째 주인공은 프랑스의 도시 안시(Annecy)에서 태어나 이모집과 기숙사를 전전하며 지내는 10대 후반의 여자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긋해진 그녀는 알제리 공수대원들이 프랑스 영토에 뿌려질 거라는 뉴스를 들으며 차라리 내전(內戰)이 일어나 혼란스러워지면 그 틈에 도망을 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기대했던 내전은 일어나지 않지만, 그녀는 마침내 가출을 하고, 찻집에서 일하기 시작하는데, "매일이 똑같은 일과 똑같은 말들의 반복"(p.96)인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 "이제 기숙사 침실, 교실, 식당, 기도실이 아니라 초콜릿 에클레르, 밀크티, 에스프레소, 피스타치오와 딸기향 아이스크림, 마카롱, 아가씨 설탕 좀 더 주세요, 였다."(p.96) 찻집을 그만둔 후 인심 좋은 노부인의 일을 돕기도 하고, 부자 부부의 베이비시터로 일할 기회가 생기지만, 그녀 인생은 역시 지루하게 반복될거라는 생각은 마찬가지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지루한 삶에 마침표를 찍는 행동을 하게 된다. 

세 번째 주인공은 런던에서 살다가 열아홉 살 되던 해 1월에 파리로 간 여자다. 그 전해 가을 노팅힐에서 만난 오스트리아 사람으로부터 파리의 아틀리에를 잠시 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파리의 포르트 드 방브 지하철역 부근 아틀리에에 머물면서 혼자 파리 시내를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 어떤 남자를 만나고, 타자를 치는 일도 부탁받는다. 그 남자를 따라 '자아의 부름'과 관련한 모임에 참석해 어떤 의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전쟁이 끝난 후 도시의 익명성 속에서, 늘 다른 것을 동경하는 젊은(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아가씨들의 삶은, 어쩌면 도전이고, 자유일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이다. 사회는 그녀들에게 차갑기만 하니까. 그래서 그녀들을 계속 '신원 미상의 여자들'로 남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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