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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모스크바에서의 오해

by mariannne 2016. 9. 16.

모스크바에서의 오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은이) | 최정수 (옮긴이) | 부키 | 2016-09-09 | 원제 Malentendu À Moscou (2013년)  

시몬 드 보부아르가 50대 후반인 1966년에서 1967년 사이에 집필한 이 중편소설은 작가 생전에 발표되지 않았다가, 1992년에야 잡지 지면에 소개되었고, 2013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우리나라에는 그보다 몇 년 후인 2016년에 책으로 나왔다. 1962년부터 1966년까지 사르트르와 함께 소련을 여러 차례 방문한 후 쓴 소설이라, 당시의 경험이 반영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은퇴한 60대 부부 앙드레와 니콜은 앙드레와 전처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마샤를 만나기 위해 모스크바에 간다. 이미 3년 전에 방문한 적이 있고, 다시 여행 삼아 가는 것이다. 앙드레와 딸 마샤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지만, 둘은 소련의 현재와 중국의 입장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자주 논쟁을 벌였다. "앙드레는 중국인들을 옹호했고, 마샤는 중국인들을 싫어하고 두려워했다. 앙드레는 마샤가 지지하는 공존의 정치를 어떻게든 비판했다."(p.87) 둘의 좁혀지지 않는 견해차에, 반복되는 대화를 옆에서 듣는 니콜이 그걸 외울 지경이었다.

앙드레와 니콜은 한 달 정도 머물 계획이었고, 여행 초반에 셋은 즐겁게 지냈다. 니콜과 마샤의 사이도 나쁘지 않았다. 마샤는 니콜에게 예의를 갖추었고, 니콜도 마샤를 좋아했다. 하지만 젊은 마샤의 안내를 받으며 모스크바를 여행하는 동안 니콜은 자신이 이제 나이 들었고, 계속해서 젊음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체중이 무너지는 것도, 조금만 걸어도 지치는 것도, 남들이 이제 자신을 '무성(無性)'으로 대하는 것도 싫었다. 몸이 피곤하니 여행이 점점 지루해졌고, 오랜만에 만난 딸과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는 남편도 못마땅해졌다. 그리고 급기야 사소한 오해가 생겨 앙드레와 니콜은 말다툼을 벌인다. 여행지에서의 말다툼은 상대방과 단절된 느낌마저 들게 했다. 니콜은 "마치 그를 영원히 잃은 것 같았다."(p.102) 

모스크바에서의 오해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오해였다. 그건 낯선 곳이었기 때문이고, 사소함이 서운함으로 느껴질 만큼  주인공들이 나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20대나 30대에 읽는 것과, 그 이후 더 나이들어 읽는 느낌이 많이 다를 것이다. 어느 순간 주인공에 감정 이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뒀다가 몇 년 후에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책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페미니즘 서적'이라는 "제2의 성(性)"(1949)의 저자다. 이 책을 읽어 본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책 속의 말은 잘 알려져 있다. 작가이면서 철학자인 그녀는 늙음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남겼다. 이 소설의 중요한 축도 '노화'다. 이외에도 어머니의 병과 임종을 지켜보며 쓴 자전적 소설 "죽음의 춤"이 있고, 불멸의 인간이 등장하는 "모든 인간은 죽는다Tous les hommes sont mortels"라는 긴 소설도 있다. 소설은 아니지만, 늙음에 대해 다룬 "노년La Vieillesse"이라는 책도 썼다. 그녀는 78세 나이에 폐렴으로 사망했고, 평생의 연인인 장 폴 사르트르와 함께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다.  


책 속 구절: 
[...] 니콜은 다시 창가로 갔다. 광장, 벤치에 앉은 사람들, 오후의 단조로운 빛 속에서 모든 것이 우중충해 보였다. 시간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었다. 시간이 매우 빠르게 지나가는 동시에 매우 느리게 흐른다는 건 끔찍했다. - 이건 부당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니콜은 자기가 가르칠 학생들만큼이나 어린 나이에 읍 단위 고등학교에 부임했다. 당시 그녀는 머리가 잿빛인 나이 든 선생들을 연민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휙! 그녀 자신이 나이 든 선생이 되었고, 그다음엔 교사직을 그만둬야 했다. 반 아이들 덕분에 그녀는 여러 해 동안 자신이 나이 먹지 않는다는 환상을 가지고 살았다. 학년이 새로 시작될 때마다 다시 어린 학생들을 만났고, 그 부동성에 단단히 결합되었다. 시간이라는 대양 속에서, 그녀는 새로운 파도들이 와서 부딪히는, 닳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바위였다. 그런데 이제는 밀물이 그녀를 휩쓸어가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휩쓸어갈 터였다. 슬프게도 그녀의 인생은 퇴각하고 있었다. 시시각각 그녀에게서 물기가 빠져갔다. 설탕이 녹기를, 추억이 잠잠해지기를, 상처가 낫기를, 지루함이 흩어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두 리듬 사이의 기묘한 단절. 하루하루가 내게서 빠르게 달아나고, 나는 그 하루하루를 따분해하고 있어. (p.88~89)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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