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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전락

by mariannne 2016. 1. 17.


전락   

필립 로스 (지은이) | 박범수 (옮긴이) | 문학동네 | 2014-09-25 

원제 The Humbling (2009년)  


번역본 제목인 "전락"이 이 소설에 적합한가? 비록 이 소설이 이렇게 시작하고는 있지만, 

그는 마력을 잃고 말았다. 욕구가 소진된 것이다. 그는 무대에서 단 한 번도 실패해본 적이 없었고, 그의 연기는 하나같이 감동적이고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도저히 연기를 할 수 없었다. [...] 마지막에는 아무도 그의 연기에 관심을 갖지 않았고, 아무도 보러 오지 않았다. 그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재능이 죽어버린 것이다. (p.9)

그래도, 이야기가 계속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건 아니다. 비록 주인공 액슬러가 자살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가 26일 동안 입원했고, 다시는 무대에 오를수도 없었지만 말이다. 

한때 유명했던, 하지만 갑자기 재능을 잃어버린 60대 배우 액슬러는 정신병원에서 만난 젊은 여자로부터 '남편을 죽여줄 수 없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이후 이야기가 이와 관련한 게 아닐까 짐작했지만 전혀 다른 내용이 펼쳐진다. 그는 곧 퇴원했고, 그녀와는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필립 로스 소설 중 가장 혹평을 받았다는, 노년의 성적 환상을 지나치게 펼쳤다는, 뭐 그런 소설이라고 말하는 것은, 주인공 액슬러가 20년 이상 차이나는 레즈비언 페긴과 연애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페긴은 그가 잘 알고 있는 동년배 배우 부부의 딸이기도 하니 이래저래 이상한 일이긴 하니까.  

액슬러는 페긴을 사랑했고(그게 사랑인지, 자신감을 찾게 된 것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페긴이 이런 것들을 원할거라는 상상을 한다. 

- 당신이 척추 수술을 받는 것. 다시 배우로 돌아가는 것. 우리 아이를 갖는 것. 

하지만, 그건 그냥 액슬러의 바람일 뿐이었다. 그가 용기를 내 수술을 받아 몸을 회복하고, 무대에 다시 오를 생각을 하고, '예순다섯 살에 아버지가 되는 것에 유전적인 위험이 따르는지 상담해줄 의사'를 찾아가기까지 했지만 말이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겠나. 한때 화려했던 남자가 다시 영광을 찾는다는 건 대체 어떤 조건이 필요한 것일까? 

장편이라기엔 좀 짧은 소설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다. 알파치노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액슬러에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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