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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인물·자기계발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

by mariannne 2014. 3. 7.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

폴 세르주 카콩 (지은이) | 백선희 (옮긴이) | 마음산책 | 2012-06-10 | 원제 Romain GARY Jean SEBERG: Un Amour a Bout de Souffle (2011년)

 

 

1914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열 네 살에 프랑스로 이주한 로맹 가리는 프랑스 외교관으로, 유명 작가로, 영화 제작자로 살다 1980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상이며 평생 한 번만 받을 수 있다는 ‘공쿠르상’을 두 번 수상한 작가다. 1956년 “하늘의 뿌리”로 상을 받고 수십 년 후, 그의 작품에 혹평을 가하는 평단을 비웃으며 “자기앞의 생”이라는 작품을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내놓아 다시 한 번 상을 받은 것이다. 1974년과 1975년에 걸쳐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그로칼랭”과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하고, 로맹 가리의 이름으로 “밤은 고요하리라”와 “이 경계를 넘어서면 당신의 승차권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를 내놓은 그에게 사람들의 엇갈린 찬사와 비평이 얼마나 흥미로운 것이었을까.


 

“그로칼랭’을 쓰고서 그는 친구들과 적들 사이를 눈에 띄지 않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를 누구보다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던 비평가들을 매료시킨 “그로칼랭”으로 그는 아주 재미있어했다. 그와 함께 고양이와 쥐처럼 술래잡기를 하던 큰 일간지의 문학비평은 신이 나서 거세 콤플렉스 운운하며 “이 경계를 넘어서면 당신의 승차권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를 성 불능의 고백으로 읽으려고 하면서도 에밀 아자르의 “그로칼랭”에는 열광한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p.218)


 

로맹 가리보다 스물 네 살이 어린 진 세버그. 그녀는 1938년 미국 아이오와 주에서 태어나, 여배우로 화려하면서도 힘든 삶을 살다 마흔 한 살 나이인 1979년 사망한다. 자살인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고 전해진다.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는 둘 다 결혼한 상태로 어느 모임에 참석하여 만났고, 서로에게 반해 재혼한다. 8년을 살았고, 이혼한 후 둘 다 다른 사람과 또 결혼하지만, 이 둘의 ‘숨 가쁜’ 사랑은 사실 한 쪽의 ‘죽음’ 으로 비로소 끝나게 된 것이다. 


 

진이 사라지자 바다로 떨어지는 유성처럼 재빨리 몇 년이 달아났다. 가리와 함께 산 8년, 갈라섰지만 결코 떨어지지 못한 채 필사적인 애정으로, 운명이 지키지 못한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서로에게 묶인 채 지낸 12년.
어느 부부가 이렇게 엄청난 시련에 버텨낼 수 있을까? 남녀 사이의 사랑 관계를 바꾸겠다고 주창하는 현대성을 어느 부부가 그들만큼 앞질러 보여주었겠는가. (p.229)


 

진 세버그가 죽자 로맹 가리는 FBI가 진을 괴롭혀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말한다. 생전에 그녀는 사회 활동에 적극 참여했고, 흑인 행동가와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 FBI는 그런 행동을 감시했고, 이상한 소문을 퍼뜨려 그녀를 함정에 빠뜨린다. 젊고 예민한 여배우에게 그런 압력은 견디기 힘든 것이 분명했다. 진은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술에 취해 매일을 살다 죽게 된 것이다.

그녀가 죽은 후 1년이 지나 권총 자살을 한 로맹 가리는 유서에 이런 말을 남긴다. – “진 세버그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깨진 사랑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른 데 가서 알아보시길.”


 

죽는 순간까지 세상의 소문과 시선을 생각해야 하는 그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 몫을 하기도 힘든 작가의 삶을 둘, 혹은 그 이상으로 만들어내며 스스로 삶을 결정하는 듯한 행동을 한 사람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에서 세상의 강요에 못 이겨 자살한 예술가와 달리 그는 세상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에밀 아자르의 이름을 생전에 밝히지도 않았다. 죽음 이후 그 이름이 알려지면 사람들이 얼마나 놀랄 지를 알면서, 그 재미있는 광경을 놓친다는 게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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