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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by mariannne 2012. 8. 21.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프랑스라는 거울을 통해 본 한국 사회의 초상
홍세화 저 | 한겨레출판


며칠 전에 읽은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보다 훨씬 재미있는 책이다. 이 책은 홍세화 씨가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로 유명해 지고 나서 몇 년 후인 1999년에 출간되었는데, 이 때는 그가 아직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이다. 20년을 빠리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람의 눈으로 프랑스와 한국의 문화를 비교한 것이고, 프랑스 이야기가 더 많다.

프랑스는, 한국과 달리 형식과 권위가 중요치 않은 나라이고, 각자의 개성이 중요한 나라,  ‘질서’보다 ‘정의’가 앞서는(즉 ‘사회불의보다는  차라리 무질서를 택한다’는) 나라다. 프랑스 역사가인 쥘 미슐레는 “영국은 제국이고, 독일은 민족이며, 프랑스는 개인이다.” 라고 했다. 이 와 관련한 사르트르와 드골 대통령의 일화가 소개된다. 2차대전  후 알제리가 독립을 외쳤을 때, 프랑스에서는 공산당 등 좌파를 제외하고 거의 모두가 식민지 유지를 지지했다. 이 때 사르트르는 식민지의 반인간성과 반역사성을 강하게 비난하며 알제리 독립자금 전달책으로 나섰는데, 이는 반역행위에 가까웠다. 이에 드골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그냥 놔 두게. 그도 프랑스야!”(p.44). 홍세화 씨는 이와 함께 우리나라의 ‘왕따’ 현상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 책이 출간된 게 1999년이란 걸 생각하면 10년 넘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10년 후, 또 10년 후는 어떨지 암담해진다. 

왕따란 결국, “너는 우리가 아니야!”라는 주장에서 비롯되는 행태이다. 반역행위에 가까운 행위를 하는 사람까지 ‘그도 프랑스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에 왕따가 설 자리는 없다. (p.45)

홍세화 씨가 남민전에 연루되어 망명했고, 지금은 진보신당의 대표인 만큼 그의 성향은 분명하다. 똘레랑스를 말하면서도, 사족으로 “우리는 한국의 극우세력에게 똘레랑스를 보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한마디로 “아니다!”(p.240)라고 말하는 쪽이다. 독일에서는 극우세력의 언로(言路)까지 완전히 차단(극우세력을 극복하는 데 자신감이 부족해서라고)하고 있는데 반해 프랑스에서는 극우파가 어느 정도의 지지세력을 갖고 있지만, 이는 한국의 극우세력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한국의 보수는 제멋대로여서 극우와 자유민주주의 사이를 마음대로 왔다갔다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수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을 극우와 자유민주주의자로 구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보수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에서도 극우와 자유민주주의를 구분해야 한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는 기쁜 마음으로 똘레랑스를 보여주고 극우에 대해서는 강력히 반대해야 하는 것이다. (p.242)

카페 문화, 토론 문화, 철학을 중시하는 교육, 동물 애호의 이중성, 이웃에 대한 무관심, 개인주의, 똘레랑스, 긴 여름 휴가 같은 잘 알려진 프랑스 문화에 대한 홍세화 씨의 시선, 깊고 진지해서 읽어 볼 만하다.

책 속 구절:
내가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수학과 글쓰기 사이의 관계에 대한 토론과 만나고 한 가지 생각해 본 것이 있는데, 한국의 논평에서 흔히 보는 양비론이었다. 한국의 신문 칼럼니스트를 비롯한 논평자들은 양비론을 무척 애용한다. 그들을 ‘비판적 기회주의자’들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는 주장을 분석하면, 결국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하다”에 ‘비판’을 더한 것이 된다. 산술적으로 표현하면, ‘양비론=양시론+비판’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한국당이 정리해고제를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시키고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면, 적지 않은 입들이 “날치기한 신한국당도 잘못했지만 파업하는 노동자들도 옳지 않다”고 떠들어댄다. 양쪽을 모두 비판하면서도 양쪽으로부터 자기보신하는 기회주의적 속성이 드러나 있다.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 지롱드에도 끼지 않고 산악당에도 끼지 않아 끝까지 살아 남은 중간파들을 몹시 경멸했다. 그들은 지롱드 편도 아니고 산악당 편도 아니었는데 또한 지롱드 편이었고 산악당 편이었다. 어디서나 난시(亂時)에 살아 남는 데에는 양비론보다 더 좋은 보신책이 없는 것 같다. 행동보다는 말로 한몫 보는 현대의 양비론자들은 비유컨대,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양쪽에서 훈수를 두는 사람과 비슷하다. 자신을 내세우면서 싸움의 현장에서 떠나 있다. 현실이란 좌표 바깥에서 고고한 비판 놀음을 즐기는 것이다.
프랑스의 텔레비전 토론장이나 신문 사설과 칼럼에서는 양비론을 발견하기 어렵다. 간혹 토론장에서 우왕좌왕하는 사람은 즉시 “그래서 당신이 속한 진영(陣營)이 어디란 말이냐?”라는 추궁을 들어야 한다. 양비론을 펴는 것은 사회 발전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으면서 토론을 죽이는 행위이다. 그래서 토론문화가 발달한 프랑스 사회에선 더욱 양비론이 들어설 틈이 없다. 그런 논리를 폈다간 지금은 작고한 장 에데르날리에 같은 독설가 토론진행자에게 “당신은 변증법도 모르냐?” 또는 “당신의 논리는 쓰레기통에 갖다 버려라!”는 말을 코앞에서 들어야 한다. […]
나는 적어도 정치평론이나 사회평론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좌표 분석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며 그 좌표 선상에 자신의 발을 붙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양비론에서 벗어날 수있고, 평론에 필요한 균형감각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 (p.194~196)

 

프랑스에서 과연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영웅 장 물랭을 죽인 게슈타포 장교 클라우스 바르비를 변호하겠다고 나서겠는가? 식민지와 피식민지의 황백혼혈아 자크 베르제스가 나섰다. 그의 목적은 ‘인류반역죄’의 위선을 파헤치자는 것이었다. 특히 프랑스의 위선을. 그는 동료 변호사로 알제리인과 서아프리카 흑인을 선택했다. 제국주의 백인 프랑스를 향해 황인, 흑인, 북아프리카 아랍인으로 이루어진 피식민지의 진용을 꾸민 것이다.
법정에서 그들이 펼쳤던 주장은 이런 것이었다. 인류반역죄의 이름으로 클라우스 바르비를 재판하면 그것으로 그만인가? 이제 나이들어 노인이 된 클라우스 바르비를 재판하여 감옥에 보내 죽이면 프랑스의 양심이 편해지는가? 그렇다면 제국주의 프랑스의 인류반역죄는 누가 단죄했나? 공소 시효가 없다면서, 또 법 제정 이전의 행위에 대하여 기소할 수 있다면서 왜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선에 대해서는 재판을 벌이지 않는가? 세계 곳곳 플랜테이션의 노예 학대 행위에 대해서는 왜 기소하지 않는가? 마다가스카르의 학살은? 아프리카에서 벌인 온갖 착취 행위는?
그뿐인가? 2차 대전 이후에, 즉 인류반역죄법을 제정한 이후에 프랑스가 알제리에서 벌인 학살과 체계적이고 일상적이었던 고문 행위는 왜 단죄하지 않는가? 우리는 지금 유태인이 희생된 것에 대하여 재판을 벌이고 있다. 그러면 이제는 가해자로 변한 이스라엘은? 사브라와 샤틸라 수용소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학살한 것은 인류반역죄가 아닌가? 미국의 베트남인 학살은 인류반역죄가 아닌가?
물론 리용 법정에서 그들의 주장은 대꾸없는 선언으로 끝났다. 클라우스 바르비는 종신 징역을 선고받았고 몇 년 뒤에 눈을 감았다. 베르제스 변호사의 주장대로 그의 죽음으로 인류반역죄에 대한 단죄가 끝난 것은 아닌 게 분명하다. (p.297~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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