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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by mariannne 2009. 8. 13.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올 봄 세상을 떠난 장영희 교수가 생전에 월간 "샘터"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엮은 에세이집으로, 운명을 달리하기 직전까지 직접 제목을 정하고, 원고 교정지를 확인한 책이다. 그녀는 하늘나라에 간 뒤에도 책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그녀의 삶이나, 제목에서 느껴지는 진지함 때문에 극적인 내용이나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을거라 기대하게 되지만, 사실 일상의 소소한 감동과 사소한 발견, 보통 사람과 똑같이 살아가는 기쁨과 슬픔들로 채워져 있다. 한비야의 책을 읽는 것처럼, 유쾌하고 활기찬 기운이 느껴진다. 2년동안 힘들게 써서 완성한 학위 논문을 통째로 도둑맞고 의욕을 상실한 후 '다시 시작하기'를 배웠다는 이야기부터, 아버지(고 장왕록 교수)에 대한 그리움, 자살 직전의 학생을 상담한 후, 그 학생을 잡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 게으르고, 흠 많은 자신에 대한 책망,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통해 삶에 대한 소중함과 경건함을 일깨운다. 누구에게든 추천하고 싶은 책.

책 속 구절 :
얼마 전 어느 잡지와 인터뷰를 했다. 최근 몇 년 간 나에 대한 기사는 거의 암 환자 장영희, 투병하는 장영희에 국한되어 있어서 그냥 인간 장영희, 문학 선생 장영희에 초점을 맞춰 줄 것을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나는 열심히 문학의 중요성, 신세대 대학생들의 경향 등등을 성의껏 말했다. 그런데 오늘 우송되어 온 잡지를 보니 기사 제목이 '신체장애로 천형天刑같은 삶을 극복하고 일어선 이 시대 희망의 상징 장영희 교수'였다.
'천형 같은 삶?' 그 기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난 심히 불쾌했다. 어떻게 감히 남의 삶을 '천형'이라고 부르는가. 맞다. 나는 1급 신체 장애인이고, 암 투병을 한다. 그렇지만 이제껏 한 번도 내 삶이 천형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사람들은 신체장애를 갖고 살아간다는 건 너무나 끔찍하고 비참하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이 있듯이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 그런대로 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살아간다. 솔직히 난 늘 내 옆을 지키는 목발을 유심히 보거나 남들이 '장애인 교수' 운운할 때에야 '아참, 내가 장애인이었지'하고 새삼 깨닫는다. (p.178~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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