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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경영·경제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by mariannne 2011. 4. 23.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 조직론으로 본 한국 자본주의의 본질적 위기와 그 해법,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2  (박권일,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책은 '샌드위치 위기론'이 아니라 '조직론'에 관한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언급하여 화제가 된 '샌드위치 위기론'은 책의 머릿말에 잠깐 언급되며, 잘 알려져있다시피 대한민국이 '별 기술이 없다'는 이유로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는 상황에서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라는 것인데, 이 책에서는 " '기술이 없다'는 명제는 '없다'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보면 없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보면 있다는 결과가 나오는 종류의 명제"(p.16)로, 칼 포퍼가 말한 '과학적으로 반박하고 반증할 수 없는 담론이자 '열린 사회의 적들'이라는 것을 '허구'의 첫번째 이유로 들고 있다. '샌드위치 위기론'이라는 말은, '경제학자들은 이런 위기가 진실인 경우와 진실이 아닌 경우 각각에 대해서 모두 자신의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다'(p.16)면서, 샌드위치 위기론은 '이 담론이 지독히 동어반복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기술부재론보다 논리적인 문제점을 하나 더 가지고 있'(p.17)는데, '경쟁적 균형이 존재하는 한, 모든 기업 그리고 모든 생산자는 언제나 샌드위치 구조 안에 들어가 있'으며 따라서 '이 명제는 늘 옳고, 늘 동일한 구조를 반복하며 생산'되기 때문에 " '언제나 옳다'라는 진리값을 가진 동어반복에 불과하다"(p.17)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논리적 문제점 이외에도, 샌드위치 위기론은 '전형적인 외인론'에 해당하며, '진정한 위기의 극복은 언제나 자신 내부의 문제, 즉 내인론과 외인론이 적절하게 결합되며 종합적 사유와 판단을 만들어줄 때에만 가능'(p.20)하기 때문에, '경세제민 經世濟民, 즉 세상을 운용하고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경제학 정신이 탄생시킨 이론 중의 하나인 조직론이야말로 샌드위치 위기론 같은 사이비 과학이 난무하는 한국에 더욱 절실히 필요한 순간'(p.21)이라는 것이다. 

샌드위치는 이정도로 하고, 본격적으로 조직론에 대한 얘기. 한국에서 조직론의 도구들이 작동하는 경우는, 기업에서 대규모 감원을 하거나, 정부 기관들 사이의 직제 개편이 일어날 때(p.32~33) 정도고, 사실 기업에 대한 정의들 중 "기업은 블랙박스다!"(p.41)라는 게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일 정도로, '조직으로 기업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이제 10년이 조금 넘는 일'(p.41)이다. 조직에서 누가 정말 필요한 사람이고, 누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만 해도 경제 위기의 90% 이상은 해결될 것(p.54)이라는데, '시장이 더 싸면 시장에서, 조직이 더 싸면 조직에서'(p.64) 따위로 '시장에서 단순하게 구매하는 것보다 더 비싸게 제품을 만드는 부서는 굳이 조직 내부에 남겨두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게 기업의 조직 관리에 대한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기업 조직내에서는 미묘한 경쟁이 있어, 라인 조직과 스태프 조직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참모 조직과 실제로 생산기능을 수행하는 실무 조직 사이의 경쟁(예를들면, 건설 회사의 경우 내근과 외근, 혹은 기획부서와 사업부서 사이와 같은 관계)이 '업무의 비균일성'을 형성하여 서로가 "도대체 누가 일하는가"라는 불평(p.105)을 갖게 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기업 내에서는 상층부와 하층부(실무조직이 쓰는 노트북과 관리조직이 쓰는 데스크탑 같은?)의 단절도 있고, 순환형 시스템을 선택할 것인지, 숙련도를 중요시 할 건지의 문제도 있으며, 20대와 일하는 법도 알고, 여성과 일하는 법, 지역 주민과 친해져야 하는 법, 그리고 요즘 특히나 주목 받고 있는 '중소기업'과 일하는 법도 잘 알아야 할 텐데, 과연 한국기업의 '조직'에 대한 성숙도는 어느 정도인가. 정답은 아닐지라도 저자 나름대로의 해결 방식이 이 책에 있어 많은 기업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같다. 아니면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정답을 만들어 갈 수도 있고.

2007년 가을에 사 놓고, 몇 번이나 읽기를 시도했는지 모르겠다. 단숨에 읽어버리지 않으면 앞에서 읽은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다시 읽고, 또 다시 읽고 해야했는데, 사실 내용의 조각들은 이해가 쉽게 가지만(조직에 몸담고 있는 직장인이라면 때로는 초공감일테고), 앞뒤의 연결이 어려워 반복해서 읽어야했다. 읽고 나니 미루어둔 숙제를 해치운 것 같아 좋은 기분이다.   

이 책은 현재 절판되었고, 전면개정판인 "조직의 재발견"을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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