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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비밀의 숲

by mariannne 2008. 8. 31.

비밀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문학사상사)

이번엔 하루키 에세이다. 역시 모두 전에 읽은 글인데, 한 권 혹은 여러 권 속에 나눠 있던 에세이를 다시 편집한 것인지 어떤지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상관 없다. 새로운 제목의 책으로 다시 읽고 있자니, 새롭게 즐겁다. 하지만, 나 같은 독자가 아니라, 다른 많은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재출간본'이라든가 '재편집본'이라는 표시가 어딘가에게 되어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루키' 브랜드라면 뭐든지 좋다는 마니아가 아니라면 어쩐지 억울할 것 같다.

역자는 '하루키의 에세이는 심해에서 떠올라 마음껏 들이마시는 산소 같은 것'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런  절묘한 표현을 했을까. 그렇게 절절한 의미는 아니지만,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 건 충분히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이긴 하다.

(실제로 그렇진 않겠지만) 힘들이지 않고 취미처럼 쓴 에세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이 될 수 있다니, 그는 얼마나 행복할까.  

책 속 구절 :
왜 나이를 먹으면 상처받는 능력이 떨어지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 물론 마조히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기분은 좋지 않다. 하지만 그런 일로 낙담하거나 며칠이고 끙끙 앓으며 고민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지, 뭐. 다, 그런 거잖아.' 하고 생각하고 그걸로 잊어버린다. 젊었을 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잊으려고 애를 써도 쉽사리 잊을 수 없었다.
결국 이것은 '어쩔 수 없지, 뭐. 다, 그런 거야.'하고 생각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다시 말해, 몇 번이나 그런 비슷한 일을 경험해왔고, 그 결과 무슨 일이 생겨도 '뭐야, 또 지난번과 똑같은 일이잖아?' 하고 생각하게 되어서, 이젠 매사에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 오히려 어리석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좋게 말하면 강인해진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순진한 감수성이 닳아버렸다는 의미이다. (p.130~131)

오랜만에 잠시 귀국을 하게 됐는데, 어느 출판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 우리 출판사에서 쇼와 문학 전집을 출간하려고 하는데, 거기에 선생님의
《1973년의 핀볼》을 수록하고 싶습니다."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영광이지만, 《1973년의 핀볼》은 전집에 넣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작품으로 바꿔 넣을 수 없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상대방은 "작업이 이미 진행중이고, 길이로 보아 그 작품이 적당하다.'는 말을 이리저리 빙 둘러서 말했다.
"길이로 보아 적당하다."니, 그건 좀 아무래도 곤란하다. 나는 문장을 재어서 팔아먹고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이 사람은 내 작품을 전혀 읽지 않았거나, 아니면 읽었어도 전혀 평가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아주 강하게 들었다. [...]
그런데 훗날, 이 전집을 기획했단 분은(아마 내게 전화를 걸어온 사람일 것이다) 전집을 간행하던 도중에 물속에 투신자살했다고 들었다. 전집을 간행하는 동안의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p.14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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