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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해변의 카프카

by mariannne 2003. 9. 8.

해변의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 저 | 문학사상사)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이라면 무조건 다 구해서 읽는다. 그리고 행복해한다. 그는 ‘책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작가임에 틀림이 없다. 특히 그의 단편소설과 에세이는 달콤한 캬라멜 시럽처럼 입안에서 기분 좋게 맴돈다. 그리고 장편소설은 부드러운 크림처럼 읽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감동과 모호함이 가슴 속에 함께 남는다.

“해변의 카프카”는 어느 주엔가 각종 일간지 도서소개코너에 일제히 실렸고, 하루키의 신작을 기다려온 팬이라면 당장 사서 읽지 않고는 못배기도록 만들었다. 다행히도 Yes24리뷰를 통해 ‘기대 이하’라는 소리가 조금씩 들렸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하루키 소설의 딱 평균 정도로 씌여진 것 같다. 물론 여러 번을 읽고 되씹으면 느낌이 달라지고, 더 많은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의 작품을 한 번 더 읽으라고 한다면, 나로서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상실의 시대”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를 읽겠다.

그렇다고 이 책이 보통수준이라는 것은 아니다. (물론 훌륭하다!) 소설 초반부의 가쁜 호흡에 비해 후반으로 갈수록 늘어지는 숨소리에 좀 짜증이 났을 뿐이다. 종국에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전개가 되었는지 모호해졌기 때문에 좀 실망스러웠다. 그나저나 하루키의 상상력은 참으로 대단하여 엉뚱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고양이의 보은”은 보는 것처럼.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엄청나진 않지만, 전개과정에서 일어나는 억지스럽기까지 한 상상력은 기가막히다! – 호시노청년이 고양이와 처음 대화하는 장면은 “고양이의 보은”의 여자주인공이 처음으로 고양이와 얘기를 나누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기발하군!

몇 달 동안 너무나 열심히 소설을 써 내려간 작가가 힘이 쪽 빠져버려서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아니면 이 소설은 입구의 돌을 통해서 어떤 다른 소설과 이어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책 속 구절 :
그 소리를 신호로 의자 위의 모습이 움직인다. 커다란 배가 방향을 바꿀 때처럼 몸이 천천히 각도를 바꾼다. 그녀는 턱을 괴었던 팔을 빼고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린다. 나는 그것이 사이케 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숨을 삼킨 채 내쉴 수가 없다. 거기에 있는 것은 현재의 사에키 상이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현실의 사에키 상인 것이다. 한동안 그녀는 나를 보고 있다. <해변의 카프카> 그림을 응시할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의식을 집중해서. 나는 시간의 축에 대해 생각한다. 아마도 내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서, 시간에 어떤 이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현실과 꿈이 뒤섞여버린 것이다. 바닷물과 강물이 뒤섞이듯이. 내 머리는 거기에 있을 의미를 찾아 움직인다. 하지만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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