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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by mariannne 2003. 11. 22.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은희경 저 | 창비)

그녀의 첫 장편과 단편집인 “새의 선물”, “타인에게 말걸기”에 비해 후속작들이 세월만큼 더 좋아지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그녀의 작품이 진짜 그렇게 별로인걸까... 평은 좋지 않아도, 나는 이 책이 좋다. 그녀만큼의 이야기거리와 상상력과 수다와 글재주가 내게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의 초판이 나왔을 때 바로 읽었는데, 며칠 전 갑자기 어떤 이야기의 줄거리가 생각났고, 그게 은희경의 작품 중 하나였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소설 “멍”의 이야기다. 그저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는 거나 좋아하고, 마셨다 하면 언제나 몹시 취해 술주정이나 하고, 눈치 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정이나 주고, 그걸 제대로 표현도 못하면서 그 주위를 얼쩡거리는 ‘비사회적인 인간’이 있다. 하지만 그 인간의 아내는 (물론 그의 행동이 이 사회에서 지탄 받아 마땅한 무책임한 거라는 걸 알고는 있었을거다) 그 모든걸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했으며, 그가 술에 취해 길바닥에 쓰러져 죽었을 때에도, 긴 여행을 떠난 것으로 애써 미화했다. 다시 읽어도 좋았다. 

은희경의 소설을 통해 바로 이 시대를 사고 있는 중, 장년의 다양한 모습을 접하게 된다. 그건 아주 특별하지도 않고, 아주 낯설지도 않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은 의외로 소설만큼이나 극적이기도 하며, 누구나의 인생에서 그런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임신하여 마취 없이 뱃속의 혹을 떼어내는 경험을 하고, 그깟 애 낳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연이 주는 고통은 다 견딜만한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내뱉는 아내. 은희경 소설의 여주인공은 보통의 여자들보다 조금 더 쿨해서 좋다.

이 책에 나온 일곱개의 소설 중 “지구 반대쪽”과 “여름은 길지 않다”는 좀 낯설지도 모른다. 성급한 사람은 그녀에 대해 실망을 할지도… 대신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과 “멍”은 그녀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작품이니 이 두 편을 먼저 읽으면(어차피 맨 앞에 있다)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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