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소설

반짝 반짝 빛나는

by mariannne 2003. 11. 20.

반짝 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저 | 소담출판사)

에쿠니 가오리를 읽는 느낌이 이랬던가. 처음에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을 읽고 있다는 착각을 했다. 문장은 짧고 대화는 가볍고 주인공은 어리광쟁이지만 그와 그녀가 처한 상황은 비정상적이고 분위기는 버거울 정도로 무겁다. 둘의 글이 이렇게 닮았던가. 아니면 그냥 내 느낌인가. 요즘 일본의 젊은 작가들이 다 이런건가.
처음에는 주인공의 덜 떨어진 말투와 행동에 짜증이 났다. 이런게 에쿠니 가오리인가… 다른 리뷰의 호평에 기대가 컸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빠져들게 되는 건, 정말이지 희안했다. 분명 능숙한 솜씨는 아닌데… 어설프면서도 상당히 솔직하고 감성적이라 자꾸 슬퍼졌다. 실제로는 절대 좋아할 수 없을 것 같은 쇼코라는 인물에 애정이 생기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쇼코와 무츠키는 천생연분이 아닐까. 그런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힘들지만, 결혼에 합의하고, 근본적인 우울함을 안고도 그만큼 명랑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인 것 같다.

“오! 수정”이었던가. 같은 시간에, 같은 상황을 함께 겪었지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기억하는 것은 몹시 달라 인상적이었던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는 작가가 두 명이라 확실히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반짝 반짝 빛나는”은 무엇 때문에 두 사람이 번갈아서 이야기를 했을까. 이를테면, ‘정신을 잃은 장면’의 서술을 ‘정신을 잃은 당사자’가 한다는 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화자가 등장한 것에 대한 분명한 이유가 없는 걸 제외하고는, 마음에 드는 소설이다.

책 속 구절 :
“있지, 오래도록 지금 이대로 있을 수 있도록, 이라고 이 학종이에다 빌었었어. 하지만 써버리면 별 효과가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이 학종이는 그냥……”
나는 침묵하였다. 무츠키가 아주 슬픈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슬프다기보다, 애처로운 얼굴. 견딜 수 없다는 얼굴.
“왜 그래?”
간신히 소리내어 내가 물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을 수는 없는 거야.”
무츠키도 간신히 소리내어 말하는 것 같았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도 흘러가. 변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야.”
나는 사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변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그랬잖아. 우리 둘 다 그러고 싶어하는데, 왜 그럴 수 없다는 거지?”

'[리뷰]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하하는 저녁  (0) 2003.11.28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0) 2003.11.22
해변의 카프카  (0) 2003.09.08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0) 2003.08.12
나무  (0) 2003.07.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