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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여행책

여행의 기술

by mariannne 2004. 9. 9.

여행의 기술 : 알랭 드 보통의 여행 에세이
(알랭 드 보통 저 | 이레)

알랭 드 보통은 어쩌자고 이렇게 재미 없는 책을 썼을까. 그가 젊었을 때 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대한 믿음 하나로 이 책을 선택했지만, 초반부터 넘어가지 않는 책장을 부여 잡고 읽는 내내 씨름을 해야 했다. 나는 어쩌자고 여행을 떠나면서 이렇게 지루한 책 한 권을 가져갔을까. 겨우 100쪽을 훌쩍 넘어섰을 때, 어딘가에서 "이 책이 너무 재미 없어 억지로 읽다가 40페이지가 넘어서야 겨우 재미 있어졌다"는 내용의 글을 읽었다. 내 경우엔, 100쪽을 넘어서도 재미는 없었다. 

이전에 읽은 발랄하고 재치 있는 소설을 기대했기 때문에, 이 책은 상당히 실망스럽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을 연구하려는 사람이나, 여행에 대해 성찰을 하려는 자, 뭔가 철학적으로 따지고 들어 지적 희열을 맛보려는 자… 에게는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워낙 처음부터 난해하게 쓴 것인지, 번역이 꼬인 건지, 군데 군데 어려운 문장이 있다. 그럼에도 정곡을 찌르는 문구나 거역할 수 없는 진리를 전해주기 때문에, ‘바로 이거야!’라는 감탄사가 나오는 부분이 적지 않으니, 그의 팬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많은 것을 상상하고, 기대하지만, 사실 여행은, 떠나기 전의 그 기대의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데제생트. – “데제생트는 권태에 사로잡혔다. 실제로 여행을 하면 얼마나 피곤할까. 역까지 달려가야 하고, 짐꾼을 차지하려 다투어야 하고, 기차에 올라타야 하고, 익숙하지 않은 침대에 누워야 하고, 줄을 서야 하고… 그의 꿈들은 더렵혀졌다. ‘의자에 앉아서도 아주 멋진 여행을 할 수 있는데 구태여 움직이며 다닐 필요가 뭐가 있는가?' ” (p.22)

여행지에 있으면서도 완전히 몰입하지 못하는 인간의 우스꽝스러움. – “첫날 아침나절에 M과 나는 우리의 해변 오두막 바깥의 일광욕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관찰자들에게는 내가 긴 의자에 편하게 누워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실 신체적 외피를 떠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방 값에 점심이 포함된 것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걱정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섬을 완전히 떠나 내년에 시작하기로 한 골치 아픈 프로젝트를 찾아갔다." (p.36)

보들레르의 말대로, "사실 목적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욕망은 떠나는 것이었다. 그가 결론을 내린 대로,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 어디로라도 떠나는 것."(p.52)이긴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연과의 접촉이 아무리 유익하다 해도, 우리는 그 효과가 지속되는 시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연 속에서 보낸 사흘의 심리적 영향력이 몇 시간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p.209)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속 여행을 갈구하고, 또 금새 여행지에서의 불편함과 기대 이하의 낭만을 잊어버리고 다시 여행을 꿈꾸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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