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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생각 : 장정일 단상

by mariannne 2005. 1. 29.


생각 : 장정일 단상
(장정일 저 | 행복한책읽기)

반가운 책이 나왔다. 장정일의 단상. 이처럼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글을 읽은 게 얼마만인지. 일단 "그래, 나 이런 사람이다, 어쩔래"라고 선언해버리고 나면, 뭐든 쉬워지는 법이다. 실컷 까부순 후 “아무 뜻도 없어요”라고 제목을 떡하니 붙여버렸으니, 글을 읽고 발끈하거나 시비 거는 사람이 무안할 지경이겠다. 지능적으로 슬그머니 발을 빼는 것일까, 정말 “나 별 뜻 없거든” –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일까. 센스 만점이다. 훔칠 것도 없는 집에 들어온 도둑을 쫓아서 팬티 바람으로 뛰어가다가 후회하는 것이나, 술김에 분기탱천하여 “야, 씹새끼야, 너 깡패지”라고 외쳐대는 것이나, 대구에 온 부천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1만 원 이상 주고 볼 생각이 없어 공연장 앞에서 “표 한 장 1만 원에 구합니다”라고 적은 종이를 들고 서 있는 것이나, “『꼭 읽어야 할 시 369』에 제 작품을 선정해 주셔서 고맙”긴 하지만 “제 시는 ‘꼭 읽어야 할’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되지 않아, 수록을 절대 거절”한다고 예의바르게 물먹이는 것이나…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고, 저도 모르게 큭큭 웃어댈 일인지. 역시나 조금씩 조금씩 아껴보고 싶은 책인데, 슬프게도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300쪽이 안된다). 아껴 봐도 금새 읽겠다.

책 속 구절 :
정체성 - (전략) 욕을 하려면 인지가 되도록 상대를 콕 찍어 해야지, 너 말고는 들어 줄 사람이 없는 곳에서 누구 들으라고 히야까시를 하나. 고개를 들어 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야 씹새끼야, 너 깡패지.” 불의의 기습을 당한 깍두기가 혀를 차며 앉은 자리를 기신기신 일어난다. 그러면서 일행을 향해 “나보고 깡패란다. 이때껏 살았어도 깡패라는 말 처음 들어본다.” 정체성이란 뭔가?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것처럼 스스로 깨닫기까지는, 타인의 부름에 의해 규정되는 게 정체성이기도 하다. (중략) 그런데 깡패에겐 아무도 "깡패님, "깡패님" 하고 불러주지 않는다. 그래서 깡패는 뒈질 때까지 자신이 깡패인 줄 모른다. 그러니 얼마나 놀랐을 것인가. 갑자기 똥인지 된장인지 몰랐던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었으니. (p.63)

영화 -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많은 해석이 있어 왔지만, 나에게 영화란 너무나 명확하게 규정된다. "두 번 본 것" 만이 영화다. 한 번 보고 만 것은 영화가 아니다. 그건 길거리에서 우연하게 목격하게 된 교통사고와 같은 것.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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