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소설

러시 라이프

by mariannne 2007. 1. 1.


러시 라이프
  (이사카 코타로 저 | 한스미디어)

“러시(Lush)는 술주정뱅이라는 뜻인데, 술꾼의 자포자기 인생쯤 되겠지. 자네에게 필요한 건 오히려 그런 새로운 삶의 방식일지도 모르겠어.”(p.276) - 프로 도둑 구로사와는, “사람에게 배신당했어. 빚도 졌고, 내 인생은 실패야.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하지만 돈으로 뭐든 살 수 있다고 믿는 도다는 “Lush Life. 풍요로운 인생. 좋잖아. 나는 지금 이 순간,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누구보다도 풍요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어.”(p.13)라고 말한다. '러시 라이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후자쪽에 가깝지만, 갑부인 도다의 편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그건 저마다 지니는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지켜나간다는 의미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곳은 일본 센다이다. 센다이 역을 지나는 사람들은 한 백인 여성이 “당신이 좋아하는 일본어를 가르쳐 주세요.”라고 쓴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며 저마다 한 단어씩 적고, ‘어떤 특별한 날에’ 올라가야 한다는 전망대 엘리베이터 입구 앞에서 한 번씩 생각에 잠긴다. 물론 모두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좌절이나 실패와 인연이 없어 보이는 중년의 화상畫商 도다와 스물 여덟의 화가 시나코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도다로부터도, 아내로부터도 배신 당한 사사오카, 그리고 사사오카와 우연히 만나게 된 친구 구로사와, 구로사와가 빈집 털이 대상으로 지목한 후나키, 후나키가 해고한 도요타, 도요타가 우연히 줍게 된 교코의 사물함 열쇠...... 책 속에서는 5가지의 인간관계와, 그 이야기가 번갈아 펼쳐지는데, 결국에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모두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살인과 도둑질과 음모, 배신이 반복되지만, 마지막에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남기는 아이러니한 소설이며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빠르게 읽힌다.

책 속 구절 :
“그럴듯한 얘기 아냐? 인간은 더더욱 그래. 몇 십 년이나 똑 같은 생활을 반복하고 똑 같은 일을 계속하며 살아. 원시동물도 질려버리는 그런 반복을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 알아? ‘인생이란 다 그런 거지, 뭐’라고. 그렇게 받아들여. 이상하지. 인생에 대해 뭘 안다고 그렇게 단정하고 받아들이는지 난 모두 이해가 안 가.”
“그래 맞아.”
“자네가 그 도다라는 남자의 화랑을 그만둔 건 올바른 판단이었어. 좋지도 않은 곳에서 매일 똑 같은 일을 하다가는 머리가 돌아버릴 거야. 반복해서 같은 실험을 당하는 플라나리아 신세가 되는 거지.”
“그 말은…….”
“자네가 옳았다는 거야. 독립에 실패하고, 약간의 빚을 지고, 배신감을 맛보았다고 해도, 무작정 똑 같은 매일을 사는 것보다는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거지.”
“자네 얘기를 듣고 있으면 정말 그런 것 같은 느낌이 드니 참 신기해.”
“나도 그래. 자네랑 얘기하고 있으면 나오는 대로 지껄인 말이 전부 진짜인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 (p.272~273)

'[리뷰]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펄프 : 어느 청년의 유쾌한 추락 이야기  (0) 2007.06.03
인간 실격  (0) 2007.03.04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0) 2006.12.19
달콤한 나의 도시  (0) 2006.10.16
동경만경  (0) 2006.10.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