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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펄프 : 어느 청년의 유쾌한 추락 이야기

by mariannne 2007. 6. 3.

펄프 : 어느 청년의 유쾌한 추락 이야기  (쥘리앙 부이수 저 ㅣ 버티고)

비닐봉지처럼 여유롭고, 가볍게 떨어지기

이 책은 블로그 지인이 '운명의 가혹을 말하는 가장 우아한 형식'이라며 '강력 추천'한 덕에 읽게 되었다. 저자 소개를 읽지 않았다면 일본 소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또 실제로 하루키나 이사카 코타로, 또는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 속에서  비슷한 장면을 본 것도 같은 '기시감'을 주는 작품이다. 20세기에 갖다 놓아도, 21세기에 있어도 어디서든 어색하지 않아서, 좋게 말하자면, 그 보편적인 정서 덕에 아주 잘 '스며드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2003년 파리의 '혹독한 폭염'이나 '자본주의의 냉정함'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돈 한 푼 없이 '예술'하고 있는 저자의 삶이 마치 '파리'라서 그럴 수 있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그려질 뿐이다. 출판사에서는 왜 이 이야기에 '유쾌한'이라는 부제를 적어 놓았을까. 저자와의 인터뷰에서도 나오지만, 이 책의 원제는 "비닐봉지의 추락 La chute du sac en plastique"이다. 어느 가을 7층에서 내던져진 비닐봉지처럼 '불확실하고, 여유롭게, 가볍게' 세상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청년의 이야기는 특별히 가슴 조이는 사건 없이 잔잔하게 전개된다. 소설 속에서 트리스탕은 더 이상 '예술'을 '생산'하지 않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스스로를 먹여 살린다. 이제 슬슬 '예술'할 때가 되지 않았나. 후편에서는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휴일 오후에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지만, 몇 군데에서 번역이 좀 거슬린다. "죄송합니다." - "괜찮아요" - "원하시면, 그러니까 너, 원하면 뭐 좀 마시겠어?" - "물 한 잔이요. 아, 집이 높네요. 그러니까 너의 집 말이야" - 같은 부분은, 초벌 번역 후 손대지 않은 듯, 읽는 사람을 의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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