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경영·경제

흔들리는 디케의 저울

by mariannne 2007. 4. 3.


흔들리는 디케의 저울 : 기업경영과 법관의 법 - SERI 연구 에세이
(전삼현 저 | 삼성경제연구소)

‘기업 경영’과 ‘법관의 법’ 사이

저자는 ‘경영 현실에 부합하는 판결’이 무엇인지 논의하고자 이 책을 썼다. 문제는, “법관의 법인 판례법이 주를 이루는 영미법계 국가들의 경우 현실을 반영한 판결이 나올 수 있는 반면에, 전적으로 입법에 의존하는 성문법 체제를 택하고 있는 대륙법계 국가들의 경우는 법 적용상의 경직화 때문에 비현실적인 판결이 나올 수 있다.”(p.14)는 것인데, 이를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한 손에 저울, 한 손에 칼을 들고 눈을 천으로 가린 채 서 있는 정의의 여신 ‘디케’를 제목에 내세웠다. 즉, ‘흔들리는 디케의 저울’은 ‘경영 행위와 경영판단’에 대한 ‘법 적용 범위’와 ‘형사처벌의 범위’에 대한 것이다.

분식회계의 예를 보자. ‘분식회계가 우리 국가경제가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부작용’(p.42)이고, K사의 사례를 봤을 때, ‘K사 회장이 K그룹의 실질적 총수로 일해오면서 나름대로 국가경제에 기여한 공로가 있고’ ‘이 사건 각 범행에 있어서도 양형에 참적할 만한 여러 사정이 있긴 하지만’(p.43)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자본주의, 시장경제주의, 주식회사제도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여 법원은 ‘K사 회장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실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는 판결을 내린다.
 
이에 따른 저자의 시각은 다음과 같다. - 법원은 “회사경영과 관련해서는 현실보다는 원칙론에 비중을 두는 판결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p.43) “분식 행위를 한 것은 위법이지만, 이미 분식회계 사실 이후에 계열사가 정상화되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형사처벌을 통해 보호받을 구체적인 법익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논란이 있을 수 있다.”(p.44)면서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한 사회적 법익만을 강조한 것은 법치주의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내용은 분식회계의 사례일 뿐이다. 분식회계 외에도 M&A, 전환사채, 풋옵션, 내부자거래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이런 것들에 관심이 있다면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비상장주식에 대한 가치 평가는 어떻게 할 것이며, 회사를 지배할 목적으로 발행한 전환사채는 유효한 것인가, ‘부당 대출’의 논란에 대한 ‘재량권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등의 내용이 낯설다면, 150페이지 밖에 안 되는 이 책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각 장마다 나오는 사례들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고보니, 그 사건 개요와 판결문을 읽는 재미가 괜찮다. 두 세 번 읽다 보면 더 재밌어질 지도 모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