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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개인주의자 선언

by mariannne 2023. 1. 1.

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저 | 문학동네

체질이 소시민적이라 "야심도 없고 남들에게 별 관심도 없고, 주변에서 큰 기대를 받는 건 부담스럽고, 싫은 일은 하고 싶지 않고 호감 가지 않는 사람들과 엮이고 싶지 않"(p.59)는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문유석은 "정말이지 공부라도 잘했으니 망정이지 한국사회에서 먹고살기 힘들 뻔했다"고 말한다. 시종일관 겸손인지 뭔지 모를 태도로 "공부 하나 달랑 잘해서 먹고살고 있는 불균형한 인성"(p.84)이라고는 하는데, 어쨌거나 인문계 전국수석으로 서울법대에 입학했고, 미팅 소개팅 디스코텍 연애질로 시간을 보내다가 "이러다 정말 막장 되겠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을 느껴서 억지로 꾸역꾸역 일 년 반 인생 최고로 열심히 공부한 덕에 겨우 사시에 합격했다"(p.79)는, 대단한 사람이긴 하다. 다행히 굉장히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고, 책에 써 놓은 글만 보자면 정말이지 이 썩어빠진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정도로 올바른 생각만 하는 사람이다. 이 책은 아마도 그간 여기 저기 기고한 칼럼같은 것들을 모아 놓은 것일텐데, 사회를 향한 저자의 일관된 시선을 읽을 수 있다. 글 잘쓰는 판사라니, 앞으로 나오는 책들은 모두 주목을 받을 것 같다.  


책 속 구절: 

학창 시절 한국사와 중국사를 공부할 때 참 흥미롭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 한 왕조가 건설되어 발전하는 시기와 쇠락하여 망해가는 시기의 특징이 몇 천 년에 걸쳐 놀라울 만큼 비슷하게 반복된다는 것이다. 
발전기의 특징은 균등 분배를 지향하는 토지개혁, 귀족의 세부담 증가, 국가 직영 최고교육기관 확대 및 공정한 과거제도를 통한 신진 엘리트의 등용에 있다. 패망기의 특징은 소수 귀족의 토지 사유화 증가로 인한 대농장화, 백성의 각종 세 부담 증가, 귀족 자제 중심의 사학 증가, 고위 관리 자제를 특채하는 문음, 음서 제도 확대를 통한 지배계급의 세습 구조 공고화, 과거제의 붕괴 등을 들 수 있다. 이 같은 병리현상이 계속되면, 결국 사회적 불만이 극에 달해 민란이 일어난다. (p.81, "개천의 용들은 멸종되는가") 

사람들은 흔히 핵무기의 위협, 테러와 범죄 증가로 인한 공포를 근거로 현대사회가 끔찍하게 폭력적이라며 절망하면서 자본주의의 탐욕으로 때 묻기 전의 원시사회, 부족사회를 평화로운 낙원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런 낭만적 환상은 객관적 증거들과 다르다. 핑커는 집요할 만큼 지구 곳곳에 남아 있는 보편적인 인류의 폭력성에 관한 증거를 제시한다. 원시인 유골에서 자주 발견되는 타살의흔적, 광범하게 발견되는 식인 풍습, 아직도 원시사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파푸아뉴기니 등 오지 부족사회의 높은 살인율, 근대 이전 역사에서 보편적이었던 인간 제물, 마녀사냥, 잔인한 고문과 처벌, 공개 처형, 노예제...... 하긴 지금도 전근대적 사회, 예를 들어 IS가 지배하는 지역 등에서 벌어지는 참수형, 소년병, 여성 할례, 집단 강간, 인신매매 등을 보면 인류의 과거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낭만적 환상과는 달리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안전한 모험을 즐길 우 씨는 목가적인 과거는 없는 것이다. (p.237~238, "문명과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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